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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 칼럼]'Adieu~ Monsieur 봉황'...

입력 | 2001-06-04 16:36:00


한국 고교 야구의 산증인 풍규명 옹이 어제 타계하셨다. 뇌졸중으로 지난 몇 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하시던 풍규명 옹은 한국 야구의 도약기로 불리는 1960년대 초, 서울시 고교야구 연맹을 발족시켜 초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셨고, 나아가서는 1971년 한국 고교야구의 자존심인 봉황대기를 탄생시킨 분이셨다. 경북고가 우승한 봉황대기 첫 해엔 남우식, 정현발, 천보성, 그리고 서영무 감독과 같은 스타들을 배출 시켰고, 그 후로도 봉황대기를 거친 수많은 슈퍼스타는 아직까지도 한국 야구의 간판으로 자리 잡고 있다.

LA 다저스의 경기를 관전하다 보면 항상 홈플레이트 뒤에서 중절모와 양복을 입은 한 신사가 입에는 시가(cigar)를 물고 스피드 건을 쏘아대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 양반이 '다저 야구의 상징물' 중에 하나라면, 한국 고교 야구의 최대 '상징물'은 누가 뭐래도 풍규명 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풍규명 옹을 처음 본 것은 아마도 70년 대 중반 쯤으로 기억한다. 양복 정장 차림에 깡 마르고 늘씬한 체구, 담배를 물고 다니면서 본부석 뒤를 바쁘게 움직이며 고등학교 아구 판을 호령했던 사람이 풍규명 옹이란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프로 야구가 없던 시절엔 프로 야구 이상 가는 국민적 인기를 고교 야구에 불러 일으켰고, 프로 야구가 출범한 후에는 프로 야구의 토양을 가꾸기 위해 한 평생 아마 야구 육성에 이바지 했던 풍규명 옹의 '야구 열정'은 이 땅의 야구인들, 그리고 야구 팬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후추의 '명예의 전당' 기획 당시, '야구'란 종목의 헌액자 후보 명단 제일 처음에 '풍규명' 이란 이름 석자가 당당히 올라 있었다. 풍규명 옹의 '살아있는 인터뷰' 기회를 놓친 것이 오랫동안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그 분이라면 참으로 '살아있는 인터뷰'를 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그리고 유족의 축복을 기원하며... 얼마 남지 않은 2001년 봉황대기 출전 선수 전원의 왼팔에는 '봉황 야구의 대부'를 추모하는 검은 띠가 둘러지길 기대해 본다. 나아가서는 '풍규명 상'을 지정해서 최고의 열정과 허슬(hustle)을 선 보인 고교 야구 선수에게 포상하는 방법도 소망해 본다. 한국 아마 야구사에 큰 획을 그었던 고인에게 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Rest in peace... we remember you..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