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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간장선생' "전쟁에 휩쓸린 인간군상 코믹하게 그려"

입력 | 2001-06-04 18:30:00


영화 ‘간장선생’은 83년 ‘나라야마 부시코’, 97년 ‘우나기’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나 받은 일본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75)이 연출한 작품이다.

간장이라고? 영양학이나 요리책에 나오는 먹는 간장이 아니라 몸 속의 간장(肝臟), 간이다.

이 작품은 2차 대전 패전 직전 일본의 한 시골을 배경으로 50대 의사 아카기(이모토 아키라)를 중심으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사회와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렸다.

왜 간장선생일까? 아카기는 언제나 심각한 표정으로 환자의 증세를 구석구석 살핀다. 하지만 그의 진단은 어김없이 간염이다. 처방은 ‘잘 먹고 더 쉬라’는 것. 전시에 구하기 어려운 귀한 포도당 주사를 놓는 것으로 진료는 끝난다.

이 작품은 ‘일본판 고려장’을 다룬 ‘나라야마 부시코’, 아내의 배신으로 상처받은 중년 남성의 내면을 들여다본 ‘우나기’ 등 이마무라 감독의 대표작과는 접근법이 다르다.

삶과 죽음, 성(性) 등 원초적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은 여전하지만 두려움마저 느끼게 하는 이전의 직설법이 아니라 여유와 웃음이 가득한 간접화법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의사의 생명은 발’이라는 직업적 신조를 지닌 아카기는 매일 ‘마라톤 선수’처럼 환자들이 위급하다는 연락이 올 때마다 뛰어다닌다. 나비 넥타이 정장에 폭격에 대비해 큰 헬멧을 멘 그의 모습은 의사의 권위와는 거리가 멀다.

아카기 주변의 인물도 주변의 비웃음을 사거나 손가락질 받는 존재들로 일본의 승전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아버지의 유언으로 아카기의 조수가 된 창녀 소노코(아소 구미코), 모르핀을 찾아 헤매다 군부대까지 침입하는 외과의사 토리우미(세라 마사노리), 여자와 술을 밝히는 스님(카라 주로)….

영화는 탈출한 외국인 포로를 치료하고 아카기의 간염 연구를 돕는 이들의 활약과 국민들을 옭아매는 군부의 실상을 대비시켜 극적 효과를 배가시킨다.

그 웃음의 커튼을 살짝 걷어내면 드러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육체와 정신을 짓누르는 전쟁의 광기다. 소노코의 치부에 계란을 집어넣고 사진을 찍어대는 변태 성욕자인 군 간부와 외국인 포로를 잔혹하게 고문하는 젊은 장교의 모습이 그렇다.

심지어 노 감독이 보내는 ‘경고의 화살’은 아카기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아카기가 아들의 전사통지서를 받고 환자를 외면한 채 간염 연구에만 매달리다 세균 실험으로 악명 높은 관동군에 자신을 보내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다. 1998년 작. 이마무라 감독은 ‘붉은 다리 밑의 미지근한 물’로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참가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15세 이상 관람가. 16일 개봉.

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