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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민병욱/살빼기

입력 | 2001-06-04 18:30:00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여주인공 스칼렛역을 맡을 배우를 못 정한 채 촬영에 들어갔다. 캐서린 헵번, 수전 헤이워드 등 쟁쟁한 배우 90여명이 스크린 테스트를 받았으나 스칼렛의 이미지와 맞지 않아 탈락했다. 때문에 영국 출신 비비언 리가 그 역을 맡자 사람들은 다소 의외로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엔 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작소설에 스칼렛의 허리둘레가 17인치로 나왔는데 비비언 리도 그에 못지 않은 ‘개미허리’였던 것이다.

▷영화에서 코르셋으로 졸라맨 그녀의 허리는 남주인공 클라크 게이블의 두 손 안에 들어갈 정도로 가냘팠다. 허리 아래는 서너 명쯤 들어갈 만한 폭넓은 드레스로 우아하게 감싸 모래시계를 연상시켰다. 영화도 걸작이었지만 비비언 리의 날씬한 몸매를 한번 더 보려고 극장 앞에 줄서는 사람이 많았다. 젊은 여자들 사이엔 가는 허리 경쟁이 붙어 코르셋 업자들은 생각지도 않은 호황을 누렸다. 아름답고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비비언 리가 불을 붙였던 셈이다.

▷개그 우먼 이영자씨가 얼마 전 갑자기 날씬해진 모습으로 TV에 나타나자 사람들은 경악했다. 98㎏이던 몸무게를 달리기와 식이요법으로 64㎏으로 줄였다고 밝히자 언론은 ‘인간 의지의 승리’라는 표현까지 쓰며 이씨를 ‘띄웠다’. 이씨의 ‘성공사례’에 자극받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살빼기 작전에 나서고 그가 출연한 다이어트 비디오도 불티나게 팔렸다. 부작용이 우려되는 약이나 수술이 아닌 운동만으로 만병의 근원인 비만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그는 심어줬던 것이다.

▷그도 잠깐, 이씨가 지방흡입수술을 3차례나 받았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이번엔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사람들의 날씬해지려는 욕구를 악용해 다이어트 비디오를 팔아먹기 위한 고도의 사기극이었다는 험담도 나온다. 물론 거짓말을 한 이씨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10개월 만에 체중을 30㎏이나 줄일 수 있다는 등 허황된 살빼기 광고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소득이다. 비비언 리의 가는 허리를 흉내내려던 많은 여인들이 건강을 해쳤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min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