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해인 제주해협을 무단 통과한 북한 상선 청진2호가 4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가로질러 북상하고 또 다른 북한상선 대흥단호가 2차로 영해를 침범해 제주해협 통과를 시도하자 군 관계자들은 “결국 우려했던 사태가 일어났다”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군 일각에선 “군이 이렇게 끌려 다니기만 해야 하느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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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 “NLL이 뭔데?”〓청진2호가 4일 택한 해주 입항로는 북측이 99년9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성명을 통해 일방적으로 선포한 ‘해상분계선’의 북측 해역이었다. 청진2호는 3일 오후 영해를 빠져나갔다가 그들이 주장하는 ‘해상분계선’을 넘자 방향을 오른쪽으로 90도 가량 꺾어 NLL을 가로질러 해주항으로 들어갔다.
해군은 “백령도 북쪽으로 우회해 NLL을 넘어 해주항으로 들어가라”고 요구했지만 청진2호는 이를 무시했다. 군 당국은 당초 청진2호가 제주해협을 통과할 때만 해도 항로 단축을 위한 요인이 클 것이라고 보았으나, NLL마저 보아란 듯이 통과하자 북측의 이번 행동이 ‘정전체제를 무력화하기 위해 치밀한 사전각본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북측은 99년9월 NLL을 무시하는 ‘해상분계선’을 선포한 데 이어 지난해 3월 ‘서해 5도 통항질서’를 발표해 ‘서해 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는 북측 수역에 속하므로 남측은 2개의 수로만을 이용해 이들 섬을 오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남측, “이번엔 안 된다?”〓합동참모본부는 4일 청진2호가 NLL을 통과하자 “우리로선 최선을 다해 막으려 했다”고 해명했다. 합참 관계자는 “NLL은 북한 선박이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을 막는 선이지,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은 상황이 다르지 않으냐”는 군색한 논리를 펴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상선이 또다시 영해를 침범하는 사태로 번지자 군 관계자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다만 군 관계자는 “북측에 충분히 경고를 한 만큼 이번엔 다를 것이다. 교전규칙에 따라 철저히 대응하겠다”는 다짐만 되풀이했다.
▽술렁이는 군 내부〓군 일각에서는 “누가 군을 이처럼 변명에 급급한 집단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들이 쏟아졌다. 북한 선박이 제주해협을 무단 침범해도 정부가 북한과 협상 한번 하지않고 무해통항권을 인정하는 성급한 결정을 내놓아 북측의 ‘2단계 모험’을 자초했고 결국 정치적 판단에 따라 군 작전마저 휘둘리고 말았다는 것.
군 관계자는 “청진2호가 NLL 통과를 시도할 것에 대비해 해군은 위협기동 및 경고사격은 물론 특수전 병력의 투입까지 준비했었다”며 “남북관계 개선도 중요하지만, 군이 북한에 안방의 길마저 내주는 굴욕을 감수해야만 하느냐”고 반발했다.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