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씨 부부
소설가 이외수씨(55)가 사재를 털어 강원도 춘천시 교동 자택에 독자 사랑방을 마련했다. 작가가 직접 독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는 처음이다.
1일 그의 집을 찾았을 때, 자택 정원 빈터에 지은 ‘사랑방’ 외벽에 걸린 ‘격외선당(格外仙堂)’이란 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서예가 이동녕씨가 지어준 이 이름은 ‘격식 밖에서 노니는 신선의 집’이란 뜻이라고 한다.
사랑방은 20평이 넘는 넓은 공간이었다. 벽에는 이씨가 일필휘지로 그린 메기 그림 등 묵화 20여점이 걸려 있고, 도예가 신현철 한용호, 그리고 중광 스님의 작품도 있었다. 이튿날 열릴 개관잔치 준비로 부산한 이씨 부부는 들뜬 표정이었다.
◇ '격식없이 노니는 신선의 집'
“독자에게 사랑을 돌려드리고 싶어서 가진 돈을 다 털었습니다. 지방에서 글을 써서 먹고살도록 해주신게 다 독자들이거든요. 멋과 예술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와서 편하게 놀다가시면 됩니다.”
이씨가 별도의 사랑방을 만든 것은 찾아오는 자신의 팬들이 자택의 소화용량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그의 집을 찾아오는 독자는 한달 평균 300명이 넘는다.
“제 집에서 놀다가신 분들은 다들 맘이 편해진다고들 하십니다. 각박한 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한가롭게 사는 방식도 있다는 것을 체험해서 그런가봐요. 한번 다녀가시면 ‘약발’이 한달을 간답니다. 하하.”
사실 이씨 집에 독자의 발길이 몰리기 시작한 것은 17년전 이곳으로 이사온 뒤부터이니 벌써 오래된 일이다. ‘집필중 출입통제’라는 쪽지가 붙은 골방 작업실만 빼고 집 구석구석이 독자를 위한 사랑방이었다.
◇ 배철수-전유성도 '단골손님'
찾아오는 사람들도 각양각색이어서 행려병자부터 예인(藝人)까지, 초등학생부터 중년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찾는 이가 있는가 하면 ‘조직원 어깨’도 있다. 게다가 신부 수녀 목사 전도사 스님 무속인까지 찾아와 ‘종교 종합센터’라는 우스개 소리가 생겼을 정도. 같은 연배인 소설가 박범신 김성동을 비롯해 방송인 배철수, 가수 이남이 황신혜밴드, 개그맨 전유성 등도 단골손님이다.
이씨는 자신의 집을 찾는 독자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며 상대방의 어려운 일에 발벗고 나선다고 자랑했다. 또 그를 찾아왔던 선남선녀 중에 서로 눈이 맞아서 백년 가약을 맺은 짝이 열쌍이 넘는다며 흐믓해하기도 했다.
◇ 외모와 달리 친화력 뛰어나
이씨는 이들 결혼때 축시는 써주지만 “나이 사십이 될 때까지 가족을 굶겼으니 나는 실패한 인생”이라며 주례는 극구 사양한다. 이씨는 허리춤까지 오는 긴 생머리와 범상치 않은 얼굴 때문에 기인(奇人)으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그의 언동에서 카리스마는 찾을 수 없고 무척 순박하고 푸근한 인상을 받는다. 특히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며 진지하게 반응한다. 그의 곁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작가로서의 유명세가 아니라 이런 열린 태도가 갖는 친화력 때문일 듯 싶다.
잘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씨는 중년의 나이에도 젊은 세대와 공감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4년전부터 어렵게 컴퓨터와 인터넷을 독학으로 배웠고, 지난해에는 인터넷 사랑방(www.oisoo.co.kr)을 만들어서 직접 독자와 만나고 있다.
그는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웬만한 일들은 젊은이들보다 더 해박한 경지(?)를 자랑한다.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으로 도올 김용옥을 비판해서 명성을 날린 이경숙씨를 발굴한 것도 그였다. 인터넷에서 활약하던 ‘주부 논객’의 필력을 처음 알아보고 일면식도 없이 출판사에 적극 천거해 책을 내도록 ‘배후조종’했다.
이씨는 올해말 소설 ‘안개 중독’(가제)을 선보이기 위해 4년 넘는 각고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독자가 채워 넣는 상상의 여백을 많이 둔 색다른 작품이 될 것”이라고 귀뜸했다.
사실 이씨는 근작 우화집 ‘외뿔’이나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같은 시화집으로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한편으로 그는 정통소설가라는 자존심을 꼿꼿이 세우고 있다. 집필실 출입문을 밖에서 걸어 잠그도록 하는 엄격한 규율로 자신을 채근할 정도다.
◇ "독자 직접 소통하니 집필 활력"
“전 원고지에 흙을 쌈 싸먹으며 살지언정 소설은 철저하게 써야된다고 스스로 세뇌시켜 왔습니다. 그래야만 중앙 문단에 아무런 끈이 없는 저 같은 작자가 제 입지를 지킬 수 있거든요. 어쩌면 평단에서 소외돼서 독자와 직접 소통한 것이 오히려 개성적인 작품을 쓰는데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