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학문의 위기’라고 주장하며 지난달 18일 성명서까지 냈던 서울대 인문, 사회, 자연대 등 3개 단과대학이 4일 ‘선(先 ) 기초학문, 후(後) 실용학문’ 중심으로 서울대의 학제를 전면 개편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 3개 단과대 학장단은 이날 이기준(李基俊) 총장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이를 위한 구체적 실행방안을 담은 문건을 전달했다. 이 문건은 농생대와 공대 등을 제외한 사회진출과 직접 연결되는 법대 의대 경영대 등의 학부과정을 폐지하고 이들 분야의 전문대학원을 도입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장단은 학생들이 학부과정에서 다양한 기초학문을 접한 뒤 적성에 따라 전문분야를 선택하도록 하는 쪽으로 학제개편이 이뤄져야 기초학문과 실용학문이 상생(相生)관계로 전환돼 학문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학장은 “미국의 경우 대학에서 기초학문을 공부한뒤 대학원에서 보다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아이비 리그’(동부지역 명문대학들)의 경우도 의대나 법대의 학부과정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학문간에 균형적 발전을 위해 실용학문은 학부과정을 철폐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003년부터 의학 및 법학 전문대학원을 도입키로 내부방침을 정했지만 아직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이외에도 학장단은 고시 중심으로 가고 있는 대학문화를 개선하고 기초학문 후속세대 양성과 이들의 진로 보장 등을 위한 연구비와 교육기자재 등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참석했던 이현구(李鉉求)부총장은 “학제개편은 가장 집중적으로 논의됐지만 전반적인 토의만 이뤄졌다”며 “이 문제는 사회 전반적인 이슈들과 맞물려 있는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간담회에 대해 경영대 모 교수는 “경영학부제에 대한 수요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이를 폐지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고 법학 대학원 설립에 대한 내부 논쟁 또한 치열해 학제 개편에 대한 단대별 논쟁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서울대 교수협의회(회장 신용하·愼鏞廈)는 이날 열린 월례 회의에서 인문 사회 자연대 등 3개 단과대 교수들 및 사범대 교수들의 최근 성명서 내용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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