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민주당 최고위원들이 참석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했으나 별로 신통한 대답이 나오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오는 13일 김 대통령이 국정개혁 구상을 밝히기로 했다니 일단은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초재선 의원들이 어렵게 성명을 내고 소속의원들이 워크숍을 하면서 밤새워 토해낸 국정쇄신에 대한 열망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시간을 지체시키는 것은 대통령의 국정쇄신의지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이날 회의에서 김 대통령은 민주당 운영과 관련해 ‘대표 최고위원 중심으로 최고위원회의가 책임을 갖고 당무를 운영하면 당 총재로서 이를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최고위원회의를 당정의 주요 인사기용과 정책 채택에 관한 심의기구로 하자는 제의에 대해서도 ‘당무회의가 최고위원회의에 심의권을 부여하면 존중한다’는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김 대통령은 당과의 간격을 좁히고 의사소통의 통로를 넓히기 위해 최고위원회의를 한달에 한번씩은 직접 주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나 초재선 의원들이 걱정하는 대로 이런 약속들이 ‘말만으로’ 유야무야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그동안 이와 비슷한 약속이 여러 번 있었으나 얼마 가지 않아 흐지부지됐을 뿐만 아니라 작년 12월에는 청와대에서의 최고위원회의를 정례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난 3월 단 한번만 열렸을 뿐이다.
나아가 인적 쇄신에 관한 김 대통령의 인식이 안이한 것 같다. 이번에도 김 대통령은 “최고위원들의 뜻을 들은 만큼 앞으로 판단해 처리하겠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러나 법무장관으로 기용되었던 안동수(安東洙) 변호사만 하더라도 그 아들의 병역비리 수사가 이미 청와대 민정수석비서실의 파견검사에 의해 파악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 검사가 보고를 안했건, 보고했는데 윗선에서 묵살되었건, 그 검사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장관후보검증 ‘낙점’이 이루어졌건, 분명하고도 중대한 시스템 결함이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아무런 조처가 없는 것이다.
성명을 발표한 당내 소장파의원들은 청와대보좌진의 교체, 비선(秘線)조직의 배제, 국정운영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쇄신 등을 요구해 왔다. 이 같은 요구가 묵살되고 미봉책으로 넘어가려 할 경우 제2, 제3의 성명이 나올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우리는 김 대통령이 소속의원들의 국정쇄신에 대한 충정을 너무 가볍게 보아 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