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배우 앤서니 퀸이 3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보스턴의 브링햄 앤드 우먼 병원에서 숨졌다. 향년 86세.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 시장이자 그의 절친한 친구인 빈센트 치안치는 “퀸은 폐렴 등의 증세로 17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으며 이날 아침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인 끝에 숨졌다”고 밝혔다.
멕시코 빈민촌에서 태어난 퀸은 어릴 적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옮겨 로스앤젤레스에서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청소년시절 구두닦이, 신문 배달부, 스페인어 통역사, 색소폰 연주자, 푸줏간의 도살꾼, 권투선수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던 퀸은 18세부터 연극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영화배우로는 1936년 45초간 출연했던 ‘패롤’로 데뷔했다.
영화 배우로서 60여년간 그의 인생은 비교적 순탄한 편이었다. 거구에서 우러나오는 특유의 순박한 표정과 투박하면서도 감수성 넘치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 ‘길’에서 방랑곡예사 잠파노 역이 그랬고 ‘25시’의 모리츠, ‘노트르담의 꼽추’의 종지기 콰지모도역 역시 그의 강렬한 개성이 돋보인 작품들이었다.
오스카상과도 인연이 많았던 그는 말론 브랜도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비바 자파타’(1952년)로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4년 뒤인 1956년 고흐의 생애를 그린 영화 ‘러스트 포 라이프’에서 고갱역을 열연해 두 번째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이후로도 세 차례 더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나 남우주연상은 끝내 받지 못했다.
생전 그가 가장 애착을 보였던 역은 64년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였다. 퀸은평소 “내가 바로 조르바”라고 말하곤 했을 정도로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농부 조르바를 자신과 동일시했다. 1972년 펴낸 자서전 ‘원죄’는 18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말년에는 배우보다 화가와 조각가로 더 많이 활동했으며 ‘조르바의 영혼’ ‘조르바의 노래’ 등 조르바로부터 받은 영감을 조각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1998년 아들 로렌조 퀸과 함께 한국을 방문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회화 조각 판화 등 100여점을 선보인 전시를 갖기도 했다.
영화에서와 달리 사생활은 순탄치 않은 편이었다. 세 번 결혼했고 두 번 이혼했다. 결혼 생활 동안 그는 혼외정사 등 여러 차례 떠들썩한 스캔들을 일으켰다. 96년에는 81세의 나이에 40여년 연하의 비서출신 세 번째 아내 케시 벤빈으로부터 증손녀 뻘의 딸을 얻어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3명의 부인과 2명의 연인으로부터 9남4녀 등 13명의 ‘공식’ 자녀를 둔 퀸에게는 확인되지 않은 ‘비공식’ 자녀 3명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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