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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의 대인관계 클리닉]"자나깨나 사고걱정"

입력 | 2001-06-05 18:36:00


30대 중반의 강모씨. 요즘 불안하고 잠이 오지 않는 날이 많다. 뉴스에서 사고소식을 들으면 나도 그런 사고를 당하면 어쩌나 싶고, 고가도로를 지날 때는 가슴이 뛴다. 터널을 지날 때는 무너질까봐, 엘리베이터를 타면 떨어질까봐 불안하다. 어린아이 유괴나 납치사건을 보면 아이들한테 끈질기게 되풀이하여 주의를 주기도 한다.

심지어 앞으로는 병원에서 보험으로 진료 받는 것도 인터넷으로 검색될지 모른다는데 하며 불안해한다. 남이 알면 안되는 큰 병을 앓은 적은 없지만, 어쨌든 질병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젠데 그런 정보가 인터넷에 뜬다는 자체가 견디기 힘든 압박감을 준다. 누군가가 그 정보를 해킹해서 다른 용도로 사용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두렵고 불안해진다.

그래서 요즘은 아주 작은 갈등도 피하고 웬만하면 양보하고 지낸다. 그런데도 얼마 전 사소한 차량 접촉사고로 경찰서까지 가고 말았다. 상대방의 억지가 심했던 것이다. 다행히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는 게 밝혀졌다. 하지만 헤어질 때 상대방은 “내가 너 어디 사는지 다 아니까 두고 봐라!”하는 협박을 잊지 않았다.

“문제는 그 친구 협박에 제가 정말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겁니다.” 그의 말이다. “전화벨이 울리다 끊어지기만 해도 그쪽에서 거는 것 같고, 미행을 당하는 것도 같고, 아무튼 하루하루 사는 게 고역입니다. 제 피해의식이 지나치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온전한 정신을 갖고 산다는 것도 이상한 거 아닙니까?”

그의 말대로 일지 모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와 비슷한 증상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의식주의 본능이 충족되면 사람은 다음 단계로 안전에 대한 욕구를 추구한다. 그런데 사방에서 그것을 위협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도 혹시나 하는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반정신의학(anti-psychiatry)이란 학문적 주장이 있다. 영국의 로널드 레잉을 비롯한 일련의 정신의학자가 주장한, “개인이 미친 것이 아니라 병든 사회가 병든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이론이다. 요즘 들어 새삼 그의 이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 병든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자. 그리고 나쁜 일은 내가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보다는 덜 일어난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길밖에 없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 그 걱정에 눌리면 결국 불안신경증에 피해망상으로 발전한다. 그런 사회에서 사는 것도 억울한데 병까지 걸리면 억울함을 어디 가서 호소할 것인가.

양창순(신경정신과전문의)www.mind-op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