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무령왕릉 발굴 현장
1971년 7월5일, 충남 공주의 송산리 고분군(古墳群). 5, 6호분 주변에 장마에 대비한 배수로 공사가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었다. 한 순간, 쨍하는 금속성 소리가 정적을 깼다. 예상치 못한 벽돌 하나가 삽날 끝에 걸린 것이다. 전축분(塼築墳·벽돌무덤)이었다. 1400여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백제 문화의 찬란함. 많은 위대한 발굴이 그렇듯 공주 무령왕릉의 발견 역시 우연이었다.
◇ 출토유물 특별전-학술대회등 열어
한국 고고학사상 가장 위대한 발굴의 하나이자 백제사 연구에 있어 일대 사건이었던 무령왕릉 발굴 3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 행사들이 마련된다. 국립공주박물관의 무령왕릉 발굴 30주년 특별전, 공주박물관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주최하는 국제학술대회, 발굴참가자와 관계자들의 좌담회 등. 2002년엔 ‘무령왕릉 신보고서’도 출간될 예정이다.
26일부터 7월22일까지 공주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은 출토 유물을 통해 무령왕(백제 25대 왕·462∼523년) 시대의 문화를 보여준다. 왕과 왕비의 지석(誌石), 무덤을 지키는 석수(石獸), 왕과 왕비의 금제 관장식물, 각종 금장식물, 청동거울 등 출토 유물 2900여점 중 가치가 높은 1000여점이 전시된다. 고구려 신라 등의 유물 300여점을 비교 전시하는 코너도 마련한다. 동시에 발굴 장면을 담은 사진도 전시하고 발굴 당시의 기록 영화를 상영한다.
7월6, 7일 공주 문예회관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는 무령왕릉과 출토 유물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부족했다는 반성에서 기획됐다. ‘무령왕릉을 통해 본 동아시아의 세계’를 주제로 한 중 일 고고학자 미술사학자 역사학자 건축사학자 50여명이 참석한다.
◇ 고분 특성과 당시 국제관계 규명
공주박물관의 정상기 연구원은 “그동안 무령왕릉에 대한 정교하고 치밀한 연구가 부족했다”면서 “이번 학술대회는 고분의 특성과 의미는 물론 유물의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 백제 문화의 위상 및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적 관계를 규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령왕릉 축조의 의미에서부터, 중국(남조) 고분과의 유사점과 차이점, 유물을 통해 엿볼 수 있는 백제 지방통치 양상, 일본에서의 무령왕릉 연구 동향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논문들이 발표된다.
이번 발굴 30주년 기념행사에는 무령왕릉 발굴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담겨 있다. 당시 하룻밤 사이 불과 12시간만에 발굴을 마무리함으로써 한국 고고학사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긴 발굴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엄청난 고분 발굴의 경험이 없었던데다 취재진과 구경꾼들이 인산인해를 이뤘고 취재진의 발에 밟혀 청동숟가락이 훼손되는 등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치닫자 발굴단이 당황했던 것이다.
◇ '최악의 발굴' 오명 반성도 겸해
발굴단장이었던 김원룡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1993년 작고)은 생전에 “나는 사람들이 더 밀려오기 전에 하룻밤만에 발굴을 끌내기로 작정, 밤을 새고 발굴작업을 진행시켰다. 나의 실수였고 고고학자로서의 평생의 아쉬움의 하나다. 또한 나라와 국민에 대한 큰 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선 손병헌 성균관대 교수, 이호관 전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지건길 국립중앙박물관장, 조유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등 발굴 참가자와 현장을 취재했던 언론인들이 참석해 당시 발굴 상황을 회고하고 반성하는 자리도 마련한다.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