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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게놈속엔 한국인 뿌리 담겨있어요"

입력 | 2001-06-06 18:39:00


“한국인의 유전체(게놈) 속에는 우리 민족의 한반도 이주 역사와 형성 과정이 고스란히 마이크로필름처럼 담겨 있습니다. 이브 프로젝트는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이용된 첨단의 유전체 분석 기술을 이용해 한국인의 뿌리를 찾자는 연구입니다.”

‘이브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국립보건원 중앙유전체연구소 이홍규 소장(서울의대 교수·사진)을 만났다.

EVE는 Evolution(진화)와 Epidemiology(역학)를 조합한 약자이지만, 모계 유전을 통해 자손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추적해 한국인의 원형이 된 ‘이브’를 찾아낸다는 뜻도 담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한민족의 형성 과정을 알자는 목적 이외에, 한국인의 체질을 제대로 이해해 질병에 대처하자는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T에서 C로 염기 하나가 바뀐 특정 당뇨병형(16189C)의 경우 몽고에서는 20%에 불과한 반면, 인도네시아에서는 60%나 나타납니다. 이 타입의 사람들은 세포 내의 에너지 생산 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 떨어집니다. 더운 동남아 환경에 맞춰 세포의 호흡과 몸의 움직임도 진화 과정에서 느려진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당뇨와 비만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중앙유전체연구소는 주요 대학병원에서 설치될 12개 질환별 유전체연구센터와 협력해 앞으로 10년 동안 1140억 원을 들여 체질적으로 한국인에게 많은 질환과 관련된 유전자 및 이의 발현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인자를 찾아낼 예정이다.

그는 한국인의 원형이 4만년부터 1만5000년 전 사이에 바이칼호 호수 밑 동굴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학설을 80년 중반에 내놓은 바 있다.

“아프리카를 떠나 동진하던 동북아인의 선조는 갑자기 엄습한 빙하기를 만나 빙하에 둘러 쌓인 채 무려 1천 세대에 걸쳐 추위와 싸워야 했습니다. 추위에 적응한 사람들만이 살아남게 됐고, 이 과정에서 열 손실이 적도록 눈꺼풀이 두껍고 코가 낮은 북방계 아시아인들의 모습과 체질이 형성됐지요. 당시 바이칼호는 빙하가 녹기 전이라 호수가 아닌 저지대였고, 사람들은 추위를 피해 저지대의 양지바른 동굴에서 살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 소장은 언젠가는 자신의 돈을 들여서라도 바이칼호 밑바닥에 남긴 선조들의 발자취를 탐사해 찾아내고 싶다고 힘주어 말한다.

do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