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사극 열풍이다. 지상파 방송 3사는 나란히 같은 시기에 사극을 주력 프로그램으로 밀고 있다.
숱한 트렌디 드라마를 제끼고 시청률 전쟁의 첨병으로 나선 지도 오래다.
KBS2 수목드라마 ‘명성황후’(밤9·50)에서 대원군 역으로 3년만에 사극에 복귀한 유동근(45)도 물론 이 대열에 속해있다. 최근 KBS 분장실에서 만난 그는 수염 담당 분장사에게 턱을 맡기고 있었다.
-이젠 사극이 방송사들의 ‘주력 상품’이 된 것 같다.
“워낙 거짓이 많으니까. ‘TV 외적인 상황’은 논외로 하더라도 TV도 연출된 상황, 억지 감동으로 채워지고 있으니 덧난 거다. 사극 열풍은 어찌보면 ‘반사 효과’를 보고있는 셈이다.”
-요즘 사극은 어떤가.
“멜로를 가미하든, 액션을 버무리든 다양하게 가공되는 건 좋아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에 충실해 온 사극의 정통적인 미덕은 지켜갔으면 좋겠다. 사극이 메인 프로그램이 되면서 시청률에 더욱 민감해진 제작진이 우왕좌왕하는 게 가끔 눈에 보인다.”
-‘명성황후’는 어떤가.
“당시 대원군이 처한 상황은 지금과 다를 바 없다. 열강들이 조선을 삼키려고 달려든 것과 지금 우리가 커지는 걸 막으려고 외곽에서 두터운 진(陣)을 치고있는 게 뭐가 다른가. 극중 상황이 실제와 흡사하니 정통에 가깝다고 주장하고 싶다.”
-극중 대원군은 권력자이기 전에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간이라는 점이 더 부각되고 있다.
“‘콘트라스트’(명암)가 뚜렷하다. 경복궁을 증축하기 위해 세금을 거두면서 그냥 밀어부칠 수도 있을텐데 ‘이웃나라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궁궐은 있어야하지 않겠느냐’며 처연하게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하고. ‘용의 눈물’ 이후 코믹 연기도 했던게 다양한 감정을 쏟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말이 나와서 얘긴데, 임금 이미지가 부담스럽다고 그동안 백수 역할하면서 ‘망가졌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용포입고 가마 타가다 MBC ‘남의 속도 모르고’에서는 핑크색 트레이닝복 차림에 트럭 화물칸에도 타보고, SBS ‘루키’에서는 나사 풀린 터프가이도 해봤다. 이미지가 고정되는 게 싫어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연기자가 어렵게 결정하고 다른 종류의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에는, 그 사람을 쓰겠다고 한 제작진도 이미지 변신을 충분히 도와줘야 했다.”
-그건 연기자 몫 아닌가?
“죽도록 노력하는 것과 별개로 캐릭터에 색깔 입히는 건 제작진 몫이라는 거다 (‘명성 황후’의 책임 PD이자 KBS 드라마제작국 수석 데스크인 윤흥식 주간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는 거침없었다). 방송사에서는 ‘태조 왕건’의 (최)수종이한테 ‘왕의 기운이 부족하다’고 한다는데, 과연 그 사람들이 수종이에게 어울리는 새로운 ‘왕’의 이미지를 충분히 입혀줬을까. 연기자의 ‘이미지 재창출’은 주변에서 도와줘야 가능하다.”
-부부(부인인 전인화는 SBS ‘여인천하’에 출연 중)가 사극 열풍의 한복판에 있다. 요즘 부인의 연기는 어떤가.
“잘 한다고 하면 팔불출 소리 들을테고. 하나 분명한 건 ‘명성황후’ 출연 전에는 집에서 같이 대본도 읽어줬는데, 이제는 내 대본이 생기는 바람에 헷갈려서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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