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학년이던 1997년 MBC 27기 탤런트 공채시험에 합격하면서 연예인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하고 연기 한번 배운 적 없는 내가 최종시험까지 통과한 것은 요행이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하지만 막상 탤런트가 되고나선 심한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동기 25명 중에서 20명 이상이 연극영화과 출신들이었는데 나는 그들에 비해 기본적 상식조차도 깜깜했다. 좌절감을 느꼈지만 모를수록 더 열심히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
수많은 단역을 거쳐 첫 기회가 온 것이 김소연과 이종원 선배가 주연한 주말드라마 ‘예스터데이’였다. 내게는 김소연의 고교친구로 2, 3회분만 얼굴을 내미는 정효정역이 맡겨졌다.
비중은 작았지만 최선을 다했다. 극중 시대배경인 80년대에 맞는 옷을 찾기 위해 직접 서울시내를 일일이 뒤져 의상을 준비했다. 또 극중 정효정은 감기에 잘 걸리는 연약한 아이라는 설정에 맞춰 대사 중간중간 끊임없이 휴지로 코를 풀고 재채기를 해대며 대본에도 없는 즉흥연기(애드리브)를 펼쳐보였다. 이 애드리브를 본 안판석 PD가 “야 그거 귀엽다”며 나를 주목했고 덕분에 나는 드라마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주연급이던 권오중씨와 결혼까지 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98년 메디컬 드라마 ‘해바라기’의 정신병환자 문순영역에 발탁됐고 삭발연기까지 감행했다. 하지만 그때도 내가 주목 받게된 것은 애드리브연기였다. 이는 신인이었던 내가 눈에 뜨이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지만 극중 인물에 대한 철저한 연구의 결과였다.
연기초년병의 승부는 긴장하느냐 않느냐에 달렸다. 긴장하지 않기 위해선 철저한 준비밖에 없다. 대개 신인 때는 대사 외우기에 바빠 연기는 한가지 밖에 생각못한다. 그래서 촬영현장에서 PD가 다른 것을 요구하면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게 된다. 나는 여러 상황에 맞는 표정연기와 동작을 준비했고 상대가 대사를 치는 동안 어떤 표정과 행동을 취할지 까지 준비해갔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나온 장면은 한 장면도 빠지지 않고 비디오로 녹화해 모니터링한다. 한번 틀린 문제를 두 번 틀릴 때가 더 나쁜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