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툼이 있어 경찰이나 검찰에 출두한 사람들은 흔히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잘못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참고인’을 데리고 간다.
그러나 교통사고 현장 등에 함께 있었다는 양측 참고인은 서로 자신이 편드는 쪽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기 일쑤다. 적어도 한쪽 당사자와 참고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수사기관에서 거짓 진술을 한 피의자나 참고인은 처벌받지 않는다. 우리 법은 증인이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면 위증죄로 처벌하도록 했지만 수사기관에서 거짓말을 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아무런 처벌 조항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에서의 허위진술에 대한 선진국의 처벌조항
국가
처벌죄명
근거법과 내용
미 국
허위진술죄
연방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관할업무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허위진술을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미연방법 18장 1001조)
독 일
공무집행방해죄
타인의 위법행위에 대해 수사기관에서 거짓말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형법)
프랑스
위증죄
모든 재판기관 또는 수사법관(검사)의 명령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는 사법경찰관의 면전에서 선서한 후 위증하는 경우 5년의 구금형(형법 434-13조)
이에 대해 사법연수원 교수로 있는 조동석(趙東奭) 부장검사는 “피의자와 참고인의 거짓말은 수사기관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 최대의 장애물이 되므로 ‘허위진술죄’를 신설해 거짓말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에 불을 붙였다.
▽실태와 문제점〓조교수는 법률 전문지인 ‘법조’ 6월호에 기고한 논문 ‘허위진술죄의 도입 제안’에서 거짓말에 둘러싸인 수사기관의 현실을 “검은 석탄창고에서 검정색 고양이를 찾아내는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일선 검사들은 ‘검사실은 거짓말 경연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범죄분석’에 따르면 2000년 한 해 동안 ‘진범’이면서 범행을 부인한 비율이 49%에 이르렀다.
충남 홍성지청의 구태언(具泰彦) 검사는 “더욱 심각한 것은 참고인의 거짓말”이라며 “한국인들은 ‘정의’보다는 ‘의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피의자에게 유리한 거짓말을 하는데 별다른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외국의 입법례〓조 교수는 “한국에서는 피의자나 참고인이 거짓말을 할 ‘권리’가 보장돼 있지만 선진국인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법은 참고인뿐만 아니라 피의자도 수사기관에서 거짓말을 하는 경우 형법상의 ‘허위진술죄’로 처벌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는 형법상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프랑스는 형법상 위증죄로 각각 처벌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 검찰이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난 피의자와 참고인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한 적이 있으나 대법원은 이듬해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는 진실을 말해야 할 의무가 없으며 참고인의 허위진술 역시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조계 반응〓조 교수는 논문에서 허위진술죄를 도입해야 할 이유로 △효율적인 수사로 국민의 신뢰 증대 △수사에 있어서 참고인의 중요성 증가 △검사들의 업무 경감 △사법절차에 대한 시민의 참여의식 제고 등을 들고 있다.
조 교수의 제안은 미국처럼 피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선 참고인만이라도 처벌 조항을 두고, 이와 함께 ‘참고인 강제소환제도’ 등을 함께 도입하자는 것.
이에 대해 일선 검사들은 대체로 찬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검찰이 오로지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서만 일하는 ‘좋은 세상’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며 “검찰에 이 같은 큰 권한을 주면 검찰이 권한을 남용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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