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는 달리 한-러관계에서 경제협력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러시아 정부가 유럽편중에서 벗어나 극동지역 개발 등 동방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경제협력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경협 전망 중 교통 인프라 문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세계사를 보면 한 나라와 전체 국민의 운명은 국제교역로에 달려 있었다. 동양사에서도 실크로드나 해상무역로의 변화가 한 제국의 흥망과 직결된 예가 많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최근 러시아와 한반도에서 일어난 변화는 아시아태평양지역과 유럽 사이의 운송 체제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러시아와 동북아의 교역 구조에도 변화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런 논의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에서 시작됐다. 러시아의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복원될 한반도종단철도(TKR)의 연결 합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서울 방문에서 최종 확인됐다. TSR와 TKR의 연결은 세계에서 가장 긴 부산∼베를린(독일)과 부산∼로테르담(네덜란드) 부산∼쿠트카(핀란드) 노선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배로 유럽까지 40일이 걸리는 운송 기간이 기차로는 2주 정도로 단축된다. 베를린까지 보름이면 된다. 운송비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컨테이너 10만개당 3000만달러(약 390억원)가 절감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TSR는 제정 러시아 정치인 세르게이 비테의 구상으로 1891∼1916년에 걸쳐 건설됐다. TSR는 극동과 시베리아 개척에 큰 역할을 했으나 소련의 붕괴로 침체를 맞았다. 이 거대한 철로가 드디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최근 TSR의 전철화와 정보화 작업이 마무리됐다. 인공위성과 광케이블을 이용해 약 1만㎞에 이르는 전구간 어디에서라도 열차의 위치를 확인해 컨테이너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최근 전자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물류의 고속화가 더욱 요구되고 있다. 때문에 러시아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최근 러시아의 주도로 2개의 국제회의가 열렸다. 그 중 5월에 있었던 ‘유라시아 교통연합’ 사무국 설치 합의는 ‘유라시아철도 구상’을 가속화했다. 지난해 러시아 철도부는 철도 현대화를 위해 10억달러를 투자했다. 운임도 합리적으로 조정해 운송량이 최근 15%나 증가했다.
그러면 이같은 변화가 왜 한국에 의미가 있을까?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수출 구조가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은 미국시장 공략의 한계 때문에 유럽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현재 한국 해외 투자의 20%가 유럽에 집중돼 있다. 둘째, 최근 한국에서 시베리아와 극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철도연결사업이 더 중요해졌다. 또 한국이 북한내 공단과의 경협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도 신속하고 믿음직한 운송로는 필수적이다. 한반도 단일 경제권 형성을 위해서도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북한의 이익도 명확하다. 한국 러시아 등 역내 국가와의 경제협력을 밀접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화물의 영내 통과로 직접적인 이득도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통합되는 첫 걸음인 셈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북한 지도부와 TKR복원 및 TSR와의 연계 문제를 논의했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외부의 방해만 없다면 가까운 시기에 이 문제 해결을 위한 3자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가 이 프로젝트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결코 적지 않다. 먼저 TSR의 물동량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최근 지멘스와 스미토모 등 유럽과 일본 기업이 TSR를 이용키로 결정했다. 둘째, 외자 유치 등을 통해서 러시아 극동과 시베리아 지역의 개발을 앞당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를 아태지역에 통합시킬 수 있다. 러시아는 이를 위한 기초작업으로 정치적 안정 확보와 행정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러 철도사업은 ‘세기의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업은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경제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안정과 번영을 가져올 희망의 기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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