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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의 러프컷]요즘 영화계는 '돈잔치'

입력 | 2001-06-07 18:32:00


“요즘 한국 영화계는 돈으로 가득 찬 풀장에서 수영을 하는 형국인 것 같아.”

지난 4월 홍콩 영화제에서 만난 시사주간지 ‘타임’의 기자 스티븐 쇼트는 무슨 말 끝에 이런 얘기를 했다. 글쎄, 비즈니스 쪽엔 문외한인 내가 봐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일시적인 거품 아니겠느냐는 냉소적인 의심도 있었다. 하지만 매년 큰 히트작들을 견실하게 만들어 내다보니 풀장에는 돈이 더 모이고 있는 모양이다.

“너같이 직접 시나리오 써서 2년에 겨우 한편 만드는 감독은 도대체 뭐 먹고사니. 제작자들이 돈 많이 주니?” 이건 ‘엑시덴탈 스파이’라는 성룡 주연의 영화를 감독한 진덕삼이 내게 던진 짓궂은 질문이다.

자기는 영화를 아무리 성공시켜도 보너스 한푼 안주는 제작자들한테 신물이 나서 아예 자기 회사를 직접 차렸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풀장에 얼마나 많은 돈이 모이는가는 사실 대다수 감독의 수입과는 별 상관이 없을지 모른다. 풀장에 모인 돈 덕을 보는 건 흥행작을 만들어내는 소수의 감독들 뿐이다.

그렇다고 불평할 일은 아니다. 흥행이, 돈이 모든 걸 얘기해 주는 건 세계 어느 영화판이나 다 마찬가지니까. 오히려 고마워 해야할 일 일거다. 언젠가 나도 한 방 터뜨리면, 하는 가능성이라도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감독들이 주의할 점 하나. 그 한 방을 터뜨리는 순간에 흥행에 대한 지분을 꼭 갖고 있어야한다는 점이다. 한 방은 일생에 그리 자주 터지는 게 아니니까.

프랑스 영화 ‘마이 뉴 파트너’는 꾀죄죄한 푼돈이나 뜯고 사는 늙은 부패 경관이 갑자기 자기 앞에 나타나 자신의 평화로운(?) 일상을 방해하는 강직한 신참 경관을 타락시켜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신참을 타락시키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저 돈 맛(!)을 조금 보여 주는 거다.

시종일관 포복절도케 하는 영화의 결말은 의외로 서글픈 인생의 풍경을 보여주는데, 가슴이 다 서늘했던 기억이 있다. 타락하다 못해 간이 아예 배 밖으로 나오게 된 신참 경관 앞에서 기막혀 하는 째째한 늙은 경관의 작지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소망 때문이다.

그는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경주마 한 마리쯤을 소유하면서 사랑하는 늙은 펨푸 할망구와 함께 하는 소박하면서도 안락한 말년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평생을 그 지저분한 일로 소비한 대가로라도 말이다!

나의 경우. “한 방은 아무나 터뜨리나, 괜찮은 영화 좀 만들다가 조용하고 소박하게 말년을 보내면 되지”라고 한다면, 그건 내 안의 탐욕을 과소평가한 게 되리라.

그렇지만 돈 속에서 헤엄치다 익사하는 일만큼은 다들 조심할 일이다. 그건 우리 주변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다.

(영화감독)

namuss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