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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軍이 정치논리에 휘둘려서야

입력 | 2001-06-07 18:51:00


북한 상선들은 우리 국방부가 밝힌 ‘강력 대응’ 방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6일 오후와 7일 새벽에도 또 북방한계선(NLL)을 통과해 유유히 북측으로 건너갔다.

따지고 보면 사건 초기에 우리 정부가 북한의 민간선박에 대한 제주해협 무해(無害)통항 허용을 시사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제주해협은 하루에도 선박 수백 척이 오가는 곳이며 과거 간첩을 태운 공작 모선(母船)이 자주 출몰하던 해역이다. 이런 곳에 북한이 상선으로 위장한 공작선을 들여보낼 경우 우리 해군은 이를 제때에 찾아내 조치를 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북한 선박에 제주해협을 개방하는 것은 우리 해군의 작전 기조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다. 동해와 서해 북방에 집중 배치돼 있던 해군력을 쪼개 남해에도 상당수 함정을 배치하고 공중초계 활동 등을 대폭 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해군 전력으로는 당장 실행이 불가능하고, 함정 추가 건조 및 레이더기지 증설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이런 최소한의 사전 검토조차 없이 덜컥 양보수부터 내놓은 정부의 안이한 인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이런 태도를 보였으니 군도 시종 어정쩡한 자세로 북한선박이 우리 영해를 휘젓고 다니는 것을 쳐다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문제의 핵심은 국가안보를 최우선 임무로 하는 군 당국이 정치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는 데에 있다. 군의 한 관계자도 “정부 방침이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및 NLL 통과를 사실상 묵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작전을 펼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민주당 유삼남(柳三男) 의원도 “북한의 영해침범은 조직적 계획적인데 아무런 협상 없이 우리가 먼저 양보한 것은 자살골을 내준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6·15 공동선언 1주년이 다가오는데 남북대화는 몇 달째 정체돼 있는 등 정부의 답답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남북대화에 연연해 군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군의 안보 논리와 정치 논리는 수레의 양 바퀴와 같다. 안보 논리가 정치 논리에 압도당하면 국가라는 수레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여권은 더 이상 군의 안보 논리를 훼손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