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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이어령 석좌교수, 35년 교단생활 접고 '마지막 수업'

입력 | 2001-06-07 19:08:00


7일 오전 11시 이화여대 학생회관 108호 대형 강의실. 이어령 석좌교수(68·국문학)가 강의하는 ‘한국문화의 뉴 패러다임’ 종강 수업이 있었다. 다른 종강 수업이면 으레 학생들의 표정에 방학에 대한 설렘이 있을 법한데, 이날 강의는 이 교수의 ‘마지막 수업’이기 때문인지 오히려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 교수는 8월말 이화여대 석좌교수직에서 퇴임한다. 1967년 이화여대에 부임한 이래 35년 만의 일이다. 9월 공식적인 고별강의가 있을 예정이지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순수한 의미의 강의는 이날이 마지막이었다.

이날 강의의 주제는 ‘장구문화의 새 패러다임과 글로벌리즘’. 이 교수는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을 진행하면서 “여러 재료로 이뤄진 장구가 전혀 새로운 소리를 창출해 내듯, 21세기에는 서로 모순된 가치도 융합돼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75분간 이어진 이날 수업의 마지막 부분에 “새로운 시대의 학문은 새로운 선생에게 배우라”는 말로 후학의 설자리를 위해 물러설 때가 왔다는 뜻을 내비쳤다.

“나보다 훨씬 젊고 멋있는 선생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농담을 던지며 웃어 보였지만 마지막으로 교실을 둘러보는 이 교수의 눈빛에는 아쉬움과 서운함이 가득했다.

이 교수는 마지막 수업만큼은 학생들과 조촐하게 보내고 싶다며 특별 행사를 마련하지 말도록 학교측에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은사의 마지막 강의를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제자들은 꽃다발을 준비해 수업이 끝난 뒤 증정식을 갖기도 했다.

이 교수의 제자인 국문학과 김현자 교수는 학생들과 나란히 앉아 수업을 경청한 뒤 “선생님의 첫 수업과 마지막 수업을 함께 하게 돼 영광스럽다. 내 평생에 선생님을 만난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며 교단을 떠나는 스승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어 문학평론가 김미현씨가 꽃다발을 증정하자 150여명의 수강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이 교수는 강의실을 나서며 “이제 내게 그다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서 “그동안의 강의 내용을 책으로 펴내는 데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1990년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내기도 한 이 교수는 그동안 학교 밖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해 왔다. 현재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등 교수직 외에 가지고 있는 굵직한 직함만도 여러 개. 이 교수는 이날 수업에 앞서 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교수 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아쉬웠던 점은 다양한 활동을 하느라 수업에 전념하지 못했던 것”이라면서 “학생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다”고 말했다.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