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7일 프랑스오픈테니스대회가 열린 파리의 롤랑가로 스타디움을 찾았다. 남자 단식 준준결승에서 홈코트의 세바스티앙 그로장(23)과 맞붙은 안드레 아가시(31·미국)를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클린턴 전대통령은 이날 괜히 코트에 왔다고 후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공교롭게도 자신이 관중석에 자리를 잡은 뒤부터 잘 싸우던 아가시가 갑작스레 무너져 패했기 때문.
올 호주오픈에 이어 메이저 2연승을 노린 아가시는 1만5000여 홈팬의 응원을 등에 업은 그로장에게 1―3(6―1, 1―6, 1―6, 3―6)으로 역전패, 준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아가시가 첫 세트를 단 22분만에 먼저 잡았을 때만 해도 그의 손쉬운 완승이 점쳐졌다. 하지만 클린턴 전대통령이 30초 동안 쏟아진 관중의 기립 박수 환영 속에서 경기장에 나타난 뒤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2, 3세트를 각각 1게임만 따낸 채 무너지며 역전을 허용한 것. 클린턴 전대통령이 4쿼터 시작과 함께 잠시 귀빈석을 뜨자 아가시는 게임스코어 2―0으로 앞서며 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나 클린턴 전대통령이 다시 돌아온 뒤 잇단 더블폴트와 실수로 경기를 망쳤다. 반면 그로장은 포어핸드는 물론 약점으로 지적된 백핸드 스트로크에서도 다양한 구질을 구사하며 대어를 낚았다.
아가시는 경기 후 클린턴 전대통령이 온 것도 몰랐다고 말했고 그로장은 “클린턴 전대통령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그가 온 뒤 오히려 경기가 잘 풀렸다”고 밝혔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파리를 방문한 클린턴 전대통령은 프랑스TV와의 인터뷰에서 “아가시는 내 친구이며 상대 선수가 젊고 너무 빨라 패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우승후보 아가시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일약 개최국 프랑스의 영웅으로 떠오른 그로장은 호주오픈에 이어 메이저 대회에서 연속 4강에 진출했다. 그로장은 “너무 멋진 순간이었고 모든 사람이 일어나 박수를 쳐 줘 코트를 떠나기 싫었다”고 기뻐했다.
그로장은 로저 페더러(스위스)를 3―0(7―5, 6―4, 7―5)으로 완파한 알렉스 코레차(스페인)와 결승 진출을 다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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