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처럼 정부개혁에 야단법석을 떤 경우도 없었다. 정권 인수 단계에서부터 정부조직을 개편한다고 부산을 떨었고, 정권 출범 이후에도 기획예산처 중앙인사위 등을 설치하고 대대적인 중앙부처 경영진단을 실시하는 등 여러 차례 정부조직을 개편해 왔다.
김대중 정부가 유난히도 정부개혁에 힘을 쏟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집권 당시 ‘환란’으로 상징되는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당시 범세계적으로 고양된 ‘작고 일 잘하는 정부’에 대한 요구와 약속을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임기 1년 반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보면 정부가 그토록 힘을 쏟은 정부개혁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는 진단이 공감을 얻고 있다. 관료사회가 이미 레임덕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거듭된 개혁 조치에도 조직 이기주의, 면피주의 등 관료사회의 구태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부개혁이 주로 조직의 통폐합과 인원감축 위주로 이루어졌을 뿐 정부의 기능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정부개혁을 경황없이 쫓기듯 단행하고, 또 임기중에도 시한을 정해놓고 추진했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재설정하는 미션 크리틱(mission critic)을 철저히·근본적으로 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정부 기능 자체를 혁신적으로 재설계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힘없는 조직만 이리저리 통폐합하고 정부의 역할에 대한 반성 없이 인력을 몇 퍼센트 줄인다는 식의 수치놀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감축된 조직, 인력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늘어나고 말았다. 정부 조직은 김대중 정부 출범 초 ‘2부총리 2원 14부 5처 14청’에서 ‘17부 2처 16청’으로 줄었지만, 올해 초 ‘2부총리 18부 4처 16청’으로 오히려 늘어나고 말았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등 여러 개의 장관급 위원회를 합친다면 그 규모는 더 커진다.
▼‘작고 유능한 정부’ 실패로 조직 ‘요요현상’ 발생▼
그러면 왜 김대중 정부는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근본적으로 재설정하지 못했을까. 보이지 않는 관료의 저항과 사보타주 때문일까. 위기 후의 도덕적 해이 탓일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결국 정치적 이해타산이 정부개혁의 논리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정부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혁의 논리 자체가 정치적 이해타산에 의해 왜곡되거나 무산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처럼 정부개혁이 이미 물건너 간 것이라면, 내년 말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 때까지는 더욱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른바 정권 재창출을 도모하기 위해 어쩌면 노골적으로 정부개혁과 조직의 운용을 정치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개혁에 숨을 죽이다가 언젠가는 다시 몸을 불릴 기회에 대비해 온 관료사회의 기회주의적 반작용이 맞장구를 칠 가능성도 있다.
차기 정권이 들어서면 또 다시 정부개혁이 화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권의 행정적 틀을 새로 짠다는 정치적 이해타산이 ‘작고 유능한 정부’에 대한 요구를 아우를 가능성이 더 크다. 정부개혁의 요요현상에 대한 불안도 가시지 않을 것이다. 그럴수록 정부의 기능 자체를 원천적으로 혁신하려는 좀더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지금 이 시점부터 심기일전해 21세기 환경에서 정부가 꼭 맡아야 할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세부적 개혁안은 차기 정권의 몫으로 남기더라도 정부 기능의 재정립에 대한 논의는 이를수록 좋다. 소위 대권주자라는 사람들도 자신이 맡고자 하는 정부가 어떤 얼굴을 한, 얼마나 유능한 정부인지 밝혀야 하지 않을까. 정부의 기능을 혁신적이고도 과감하게 줄이는 획기적인 정부 혁신안을 짜서 범정파적으로 합의한다면, 누가 정권을 맡더라도 최소한 개혁의 흉내는 낼 수 있을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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