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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타는 국토-5]한국인 하루 395리터 '펑펑'

입력 | 2001-06-08 18:41:00


《적도 근처 남태평양의 소국(小國) 투발루.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 나라 전체가 바닷물에 잠길 위기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물이 귀한 나라에 속한다. 9개의 산호섬 군(群)으로 이뤄진 이 나라의 인구는 1만1000여명이고 수도 푸나푸티의 주민 수는 불과 2700여명. 웬만한 대학 캠퍼스 크기의 작은 섬 안에 하천이나 호수가 전혀 없기 때문에 물은 그야말로 ‘생명수’다. 집집마다 빗물을 받아두는 물탱크가 있지만 식수는 크게 부족하다.》

▼글 싣는 순서▼

1. 물물물…목타는 국토
2. 요르단강을 잡아라
3. '아랍형' 남의 일 아니다
4. 물부족, 과학으로 해결?
5. 물은 생명이다

일본이 99년 9월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장비를 푸나푸티에 설치, 식수난 해소에 도움을 주었다. 이 때문에 투발루 국민은 일본을 ‘최고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어 성공적인 ‘물외교’를 벌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 캐나다는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담수호인 휴런호를 비롯해 수천∼수만㎢ 면적의 담수호가 널려 있는 최고의 ‘물 풍요 국가’다. 수자원 전문가들은 “물 부족 시대에 캐나다는 ‘물장사’만 해도 오랫동안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들 두 나라는 물의 가치를 보여주는 상반된 사례다. 물은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경우처럼 분쟁의 원인이 되고 투발루와 일본의 경우처럼 ‘외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구에서 인류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9000㎦이며 이 중 실제 쓰는 양은 절반 정도인 4300㎦로 추정된다. 수치만 놓고 보면 아직 물은 여유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구 증가에 따른 물 사용량의 급증, 수자원의 지역 편중, 기상이변으로 인한 가뭄과 홍수의 반복 등으로 인해 물 부족 인구는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세계 물 포럼은 “2025년 세계의 물 수요량이 95년보다 약 40%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유엔 산하 국제기후변화회의도 올 초 발표한 ‘기후변화 2001’ 보고서를 통해 “21세기 지구는 고온 가뭄 홍수 등의 이상기후와 인구증가로 극심한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 부족은 식량 문제와도 직결된다. 국제 물관리연구소는 최근 “세계 식량의 절반을 생산하는 중국 인도 미국의 지하수면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예컨대 인도의 경우 물 고갈로 수년 내 곡물 생산량이 최고 4분의 1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극심한 가뭄 및 물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나라도 물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세계자원연구소가 분석한 우리나라 1인당 사용 가능 수자원(2000년 기준)은 연간 1384t으로 전세계에서 36번째로 적다. 게다가 2025년에는 1258t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유엔 국제인구행동연구소는 93년부터 우리나라를 물 부족 국가로 분류해 놓고 있다.

그러나 국민 사이에는 여전히 “물은 대체할 수 없는 자원이자 생명의 근원”이라는 인식은 희박한 편이다. 인하대 심명필 교수(토목공학)는 “물을 흥청망청 낭비하는 행태를 바꿔야 하며 정부는 미래의 물 부족에 대비한 ‘수자원 10년 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395ℓ로 국민소득에 비해 아주 많다. 세계 최대의 자원 소비국인 미국의 1인당 하루 물 사용량 585ℓ보다는 적지만 독일(132ℓ) 덴마크(246ℓ) 프랑스(271ℓ)보다는 훨씬 많다.

이는 물 값이 낮은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정용 수돗물 값은 t당 평균 276원(업무용 영업용까지 합하면 t당 396.9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6분의 1∼3분의 1 수준이다. 4인 가족 평균 물 값이 월평균 1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연세대 노수홍 교수(환경공학)는 “독일은 수돗물 값을 올려 물 절약에 성공했다”며 물 값 현실화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물 사용량을 현재보다 10% 정도 줄이면 연간 4억1000만t의 물을 아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영월댐 2개를 짓지 않아도 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또 생활하수나 공장폐수를 상수원에 마구 버리면서 깨끗한 물을 먹겠다는 ‘도덕적 해이’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환경부 남궁은 상하수도국장은 “수질이 나빠져 먹는 물, 또는 농업용수 공업용수로 사용할 수 없다면 그 자체가 물 부족의 원인이 된다”면서 “수질 개선에 드는 비용도 결국 국민의 혈세가 아니냐”고 말했다.

이화여대 박석순 교수(환경공학)는 “물 절약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정확한 물 수요량 예측을 통해 환경친화적 댐 건설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낡은 수도관을 통해 버려지는 수돗물이 연간 10억t(누수율 약 18%)으로 추정되는 만큼 낡은 수도관 교체를 위한 중앙 정부의 지원과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