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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화제도서]문둥병으로 요절한 작가 호조 다미오

입력 | 2001-06-08 18:49:00


◇ 도쿄에서

▼호조 다미오(北條民雄) '생명의 첫밤(いのちの初夜)', 가도카와(角川) 문고▼

▼호조 다미오(北條民雄) '호조 다미오 전집', 소겐(創元)문고▼

지난 달에 일본에서 있었던 한센병 재판의 판결은 여러 가지 면에서 주목을 받았다. 한센병 환자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재판에서 환자측의 주장이 전면적으로 인정되었고, 정부는 항소를 포기했다.

한센병은 일찍이 ‘나병’, ‘문둥병’으로 불리웠고, 처참한 차별의 대상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나병 예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은 1909년인데, 일본은 이 법이 제정된 이후 한 세기 가깝게 한센병 환자를 철저하게 격리 배제하는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일본 밖의 세계에서는 법 제정 당시 이미 한센병의 격리 정책이 재검토되고 있었고, 외래 치료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즉 한센병이란 불치의 병이 아니며 전염성도 극히 약하다는 것이 밝혀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일관되게 한센병 환자의 격리 정책을 고수해 왔다. 5년 전인 1996년에야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시키는 법률이 폐지되긴 했으나 환자들의 사회 복귀는 매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환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것은, 정부가 비인도적인 정책을 써 온데 대해 사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환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배상청구소송을 냈고, 이 번에 전면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 재판은 한센병 환자의 인권을 돌려 받기 위한 투쟁이었다. 이 판결이 획기적이었던 것은, 정부와 국회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을 ‘부작위(不作爲)’의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는 점이다. 이 판결을 받고 후생노동성은 90년에 걸친 격리정책의 역사를 규명하는 작업을 시작했으며, 그 작업에는 식민지 시대의 조선에서의 격리 정책에 대한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 일련의 사건에 대한 신문 보도를 접하면서, 나는 작가 호조 다미오(北條民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조 다미오는 1914년에 태어나, 스무살 때 한센병에 걸려 1937년에 2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뜬 작가이다. 그는 격리 시설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은 ‘생명의 첫밤’, ‘안대기(眼帶記)’ 등이 노벨상 수상 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瑞康成)에게 인정을 받아 문단에 데뷔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이 그에게 허락한 시간은 겨우 3년이었다. 호조 다미오의 문학은 자기 자신의 비극적인 숙명과 한센병 시설의 처참한 현실을 응시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묘사되어 있는 시설, 병상의 기술은 경악을 금치 못할 비참함 그 자체였다. 그래서 호조 다미오는 이 세상에서 지옥을 보고 싶거든 한센병 시설로 오라고 말한다. 그의 소설이 그려내는 세계는 절망 그 자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어둠이었음에 비하여, 그의 문체는 해맑은 투명감과 힘있는 묘사력으로 빛난다. 이상하게도 그의 작품을 읽은 후에는 싱싱한 생명의 입김마저 느껴지는 것이다.

호조 다미오의 문학이 우리에게 값지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죽음을 마주 보면서 ‘삶’의 의미를 찾았고, 엄청난 고뇌와 절망과 고독 속에서 투명한 문학 세계를 창조해 냈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성 회복을 위한 문학의 존재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연숙(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