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의 어린 나이로 준결승 무대를 밟았던 소녀가 그로부터 11년 만에 어엿한 성인으로 정상에 우뚝 섰다.
10일 파리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프랑스오픈테니스대회(총상금 1000만달러) 여자단식 결승. 4번 시드의 제니퍼 캐프리아티(25·미국)는 2시간21분의 풀세트 마라톤 사투 끝에 킴 클리스터스(18·벨기에)에게 2-1(1-6, 6-4, 12-10)로 역전승했다. 올 호주오픈 우승에 이어 메이저 대회 2연승 달성. 우승상금은 55만7000달러.
여자 프로테니스에서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을 연이어 제패한 것은 92년 모니카 셀레스 이후 9년 만이다. 또 1시간17분 동안 무려 22게임을 치른 3세트는 104년 역사의 프랑스오픈 여자단식 결승 사상 최장시간 기록이며 4대 메이저대회에서도 1948년 US오픈 이후 가장 길었다.
캐프리아티는 “메이저 2연승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너무 행복해 뭐라 표현할 수 없고 꿈만 같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캐프리아티는 14세 때인 1990년 이 대회에서 최연소 4강에 오르며 거센 10대 돌풍을 일으킨 주인공.
그러나 너무 일찍 핀 꽃이 빨리 지듯 부상으로 슬럼프에 빠지더니 보석 절도, 마약 흡입 등으로 90년대 중반 급격하게 무너졌다. 코트를 떠나 있던 그녀는 96년 여자프로테니스(WTA)투어에 복귀했으나 98년 6개 대회 연속 1회전 탈락의 수모를 안으며 세계 267위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재기를 향한 몸부림 끝에 지난해 20위안에 이름을 올렸고 올해 들어 제2의 전성기를 활짝 꽃피웠다.
그녀가 다시 일어서는 데는 가족의 도움이 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한 상태였으나 경기장을 같이 따라다니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는 코치를 겸했고 역시 테니스선수인 오빠는 연습 파트너로 도움을 줬다. “가족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를 수 없었으며 그들에게 빚진 게 많다”고 말한 캐프리아티는 경기가 끝난 직후 아버지 오빠와 잇따라 포옹하며 기쁨을 함께했다.
캐프리아티 자신도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10대 시절에는 TV 출연과 쇼핑 등 코트 밖 활동에 빠져들었으나 요즘은 훈련과 휴식 이외의 다른 스케줄은 거의 잡지 않는다.
오랜 방황의 세월에서 벗어나 한층 성숙해진 캐프리아티는 이제 88년 슈테피 그라프 이후 13년 만의 단일시즌 그랜드슬램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편 남자복식 결승에서는 마헤시 부파티-레안더 파에스조(인도)가 99년 이후 2년 만에 정상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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