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도와야죠'
허기진 자식에 마른 젖을 물리는 어미의 심정이 이럴까.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논에 물을 대려는 농민들의 안간힘이 눈물겹다. 그들은 ‘마른하늘’을 원망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물을 대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어디 농민들뿐이랴. 공무원과 군인, 일반 기업체도 발벗고 나섰다.
▽밤낮 없는 ‘물대기 전쟁’〓가뭄과의 전쟁에는 밤낮이 없다. 7일부터 경북 안동시 예안면 태곡리 동계천 일대에서는 ‘횃불 물대기’ 작업이 한창이다. 매일 밤 주민들이 횃불을 켠 채 야간에도 24시간 양수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
농민 소방대원 공무원 등 200여명은 최근 굴착기 4대를 동원해 동계천 일대 200m의 하천 바닥에서 어렵게 물줄기를 찾아냈다. 11.2㎞나 떨어진 논과 밭에 물을 끌어오기 위해 모두 42대의 양수기가 동원됐다.
강원 철원군 철원읍 율리리 속칭 밤까시 들녘. 30여만평의 들녘이 벌겋게 타들어 가고 있었지만 농민들은 일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았다. 이 마을 임춘근(任春根·43), 윤완덕(尹完德·43)씨와 윤씨의 형 찬덕씨(50). 이들은 지난달 29일부터 경운기 6대를 동원해 ‘6단 양수작전’을 펼치며 가뭄 들녘에 물을 댔다. 원수지인 동송읍 관우리 학저수지밑 대교천부터 밤까시까지 거리는 무려 4㎞. 툭하면 송수관 이음새가 터지고 성능이 좋은 경운기도 고장나기 일쑤였지만 그 어떤 가뭄도 이들의 억척을 당할 수는 없었다.
10일 전남 목포시 용해동 용해지구 들녘. 농민들은 양수기와 송수 호스를 동원해 3㎞ 정도 떨어진 연산동 아파트의 허드렛물을 논에 끌어오고 있었다. 이곳 농민들은 얼마 전 40여㏊의 논에 모내기를 끝냈으나 계속된 가뭄으로 논물이 마르자 7일부터 연산동 아파트 단지 하수관에 양수기를 설치해 물을 끌어오는 고육책을 쓰기에 이르렀다.
▽기업체도 나섰다〓10일 오전 울산 울주군 온산읍 처용리 일명 피등골 들녘. 이 마을 이장 김진권(金辰權·61)씨는 “지난해에는 7월 중순이나 돼야 모내기를 마칠 수 있었는데 올해는 기업체의 도움으로 오히려 한달 이상 빨리 모내기를 끝냈다”고 흐뭇해 했다.
김 이장의 논 등 이곳의 논 7500여평은 비가 내려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전형적인 천수답. 하지만 마을 인근의 대한유화 온산공장에서 공업용수를 위해 회사내 저수조에 보관중이던 물을 지난달 28일부터 하루 1000t씩 이들 논에 공급해 쉽게 모내기를 할 수 있었다.
울주군 언양읍 LG화학 울산공장도 지난달 22일부터 회사 인근의 논 2만여평에 하루 1000여t의 농업용수를 공급해 주고 있다. 이 회사는 99년 회사 공업용수 저수조에서 1.5㎞ 떨어진 삼박골 저수지까지 관로를 매설해 가뭄 때마다 농업용수를 공급해 주고 있다.
또 온산공단 내 한국석유개발공사 울산지사는 7일부터 하루 1000∼1500t의 물을 울주군 온산읍 덕신리 일대 논 9000여평에 대주고 있다.
경북 영양군의 영양온천개발은 5일부터 600만원을 들여 온천 시추공에서 뽑아낸 물을 매일 부근 농가에 공급하고 있다. 40마력 짜리 수중모터를 560m지하에 설치해 하루 500여t의 물을 들판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경북 영주의 중앙위생 등 3개 분뇨처리회사는 9대의 위생차를 보내 8일부터 가흥1동 등 4개 마을 논 4㏊에 물을 댔다. 직원들은 “비가 내릴 때까지 매일 위생차로 물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산시 진량읍 매일유업㈜ 영남공장도 원유(原乳)수송용 탱크로리 10여대를 이용해 이달 1일부터 매일 100t의 지하수를 부근 진량읍 봉회리 등 농가에 공급하고 있다.
cschoi@donga.com
▼하수처리한 물 농업용수로 재활용▼
하수처리장의 처리수가 농업용수로 재활용된다.
환경부는 10일 극심한 가뭄에 대처하기 위해 전국에서 가동중인 172개 하수처리장 중 처리상태가 양호한 89개 처리장의 물을 농업용수로 재이용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89개 처리장의 용량은 하루 194만t이다.
환경부는 “해당 하수처리장의 운영 감독을 강화해 처리수의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을 ℓ당 8㎎ 이하로 유지하고 농수로 등에 연결할 수 있도록 비상이송관로를 설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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