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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 이슬람과의 대화]파키스탄 "섬유강국 꿈꾼다"

입력 | 2001-06-10 19:06:00


이집트가 ‘나일의 나라’라면 파키스탄은 ‘인더스의 나라’다. 인더스강이 없었다면 오늘의 파키스탄 역사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슬라마바드 소재 아잠대학의 문화인류학 대가인 아흐마드 하산 다니 교수(81·사진)는 “인더스강 유역의 모헨조다로와 하라파는 인류사에 처음 등장한 계획도시였다”고 강조했다. 학교 근처 자택의 6평 남짓한 서재는 각국에서 받은 훈장과 연구 자료로 가득했다. 모헨조다로 유적 발굴에도 참여한 그는 ‘파키스탄 인류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아시아 문화인류학의 대가인 그는 이산 가족이다. 고향 카슈미르는 독자 언어를 가진 데다 2000년간 아리안계 혈통을 지켜오고 있다. 90%가 이슬람교도지만 1947년 인도와 동서 파키스탄이 분리될 때 카슈미르는 힌두교를 지배종교로 하는 인도 영토에 편입됐다. 이후 그는 50년 넘게 고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종교와 민족의 대결이 낳은 비극은 저명한 학자인 그가 인도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대학을 전전한 이력에서도 짐작된다. 인도에서 인도철학과 산스크리트문학을 전공한 그는 인도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그러다 동서 파키스탄이 인도에서 분리되면서 동파키스탄(나중에 방글라데시로 독립)으로 옮겼고 방글라데시가 독립하자 또다시 파키스탄으로 옮긴 것.

파키스탄은 중국 미국 인도에 이은 세계 4위의 면화 생산국이다. 인도에서 분리된 1947년만 해도 파키스탄에는 섬유공장이 하나도 없었지만 지금은 면사와 섬유가 수출의 65%를 차지하는 섬유 수출국이다. 섬유기계연합회 칼리드 아민 사무총장은 “면화와 저임 노동력이 풍부한 데다 한국 등지의 섬유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수출이 활황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순면 셔츠, 커튼, 소파 커버 등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공장은 1년에 이틀만 쉬고 쉴 새 없이 가동된다.

전반적인 경제 상황은 좋지 않다. 2000회계연도(2000년 7월∼2001년 6월) 국민총생산 성장 목표는 5.0%였지만 실적은 2.8% 정도에 머물 전망이다. 가뭄으로 농업 생산 부문 실적이 저조한 탓도 있다.

정부는 외국 자본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0년 7월부터 올 3월까지 외자 유치 실적은 통신 광산 등의 분야에서 2억3200만달러로 이는 전년 동기에 비해 24%가 준 것이다. 게다가 쿠데타 등 정정 불안과 정부 정책 불신 등으로 금융 분야에서 1억2800만달러의 외자가 빠져나갔다.

영문 경제지 비즈니스 리코더의 아시프 주베리 발행인 겸 편집장은 투자부진 요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70년대 알리 부토 정권의 국유화, 권력과 금융계의 밀착에 따른 거품 투자와 당연한 결과로 이어진 부도 사태, 허브 전력회사 사건으로 대표되는 정책 일관성 결여다. 허브 전력 사건은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가 계약을 파기한 일로 작년 말에 타결되긴 했으나 외국 투자가들이 파키스탄 정부를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잘못된 제도와 관료주의 등 투자 장애 요인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와심 하키 투자청장은 낙관적이다.

“좁은 도로를 달리다가 이제 고속도로에 들어섰습니다. 최근 8개월간 천연가스와 석유, 정보통신 분야 등에 3년간 20억달러에 이르는 외국자본의 투자를 약속 받았습니다. 민영화가 진척되면 3년 안에 들어올 외자는 30억달러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그는 한국 기업에 대해 자동차 전자 엔지니어링 면직물 화학 피혁 분야의 투자진출을 권유했다. 능력있는 전자 기술자의 월급이 350달러에 불과한 점을 강조했다.

박재규(朴在奎) 카라치무역관장은 “파키스탄은 인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과 저임 노동력 등 투자여건이 비슷하다”면서 “다만 문맹률이 60%나 되다 보니 생산성이 낮은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최초의 고속도로인 이슬라마바드∼라호르 구간 왕복 6차선 고속도로를 대우건설이 만든 까닭에 만난 사람 가운데 ‘고속도로 참 좋더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는 사람이 많았다. 파키스탄은 10억달러의 공사비 중 7억달러 가량을 외화 부족 등을 내세워 아직까지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 정부는 카라치∼라호르∼이슬라마바드∼페샤와르를 잇는 고속도로를 만들 계획이었지만 완공된 곳은 대우가 맡은 구간뿐. 이 때문에 고속도로는 아직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대우건설 현지 근무자인 김석철 과장은 “현재 차량 통행량은 계획치의 20% 수준에 불과해 고속도로가 아깝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력 수출품 카펫생산 현장 "아라비아 양탄자 우리도 만들어요 "▼

원시 시대부터 사용됐다는 카펫은 이슬람의 전파와 함께 세계로 널리 퍼졌다. 지금은 생활용품으로서만이 아니라 예술작품으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원조 격인 이란과 함께 파키스탄은 손으로 직접 짜는 카펫의 주요 생산국이다.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연간 2억달러 어치의 카펫을 미국 독일 일본 등지에 수출한다.

라호르 도심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타지부라’는 저임층이 주로 사는 카펫 공장 지대. 기계 24대에 직공 55명이 일하는 한 카펫 공장을 찾아갔다. 모눈종이 위에 채색된 카펫 디자인을 직공들이 작업하기 편하도록 표시해주는 일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공장은 카펫업계 32년 경력의 사이드 칸(51)이 작년에 차려서 아들에게 넘겨줬다. 라호르 시내의 전시판매장을 통해 주문을 받아 생산한다. 칸씨는 두리번거리는 기자에게 눈치 빠르게 “소년 노동자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노예처럼 혹사당하는 어린이들이 국제사회의 관심사가 된 뒤 공장에서 어린이 노동자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물론 직업이 많지 않은 사회라 시골에서 가족이 함께 카펫을 짜는 경우에 어린이가 일손을 거드는 수는 있다.

라호르 시내에만 200개 이상의 카펫 전문 전시장이 있다. 두 겹으로 짠 고급품을 주로 취급하는 한 전시장의 우스만 가니 사장(46)은 “디자이너 13명이 각국의 인기 무늬를 변형시키거나 세계 수요층의 요구를 반영해 새 디자인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요충 카이바르 고개▼

중앙아시아에서 비옥한 인더스 평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교통 요충지가 카이바르 고개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대왕, 13세기 서방 정복에 나선 칭기즈칸 등이 모두 이 고개를 넘었다. 고개 높이는 해발 1067m. 고산지대라 이 정도 높이는 ‘언덕’처럼 느껴진다.

외국인 방문객은 일단 군의 허가를 얻어야 하며 반드시 무장 경비병과 동행해야 한다. 고개 아래 잠루드는 밀수시장이다. 아프가니스탄 수출품처럼 꾸며 흘러나온 무관세 물품이 가득하다. 상인들이 대부분 권총 등으로 무장하고 있어 겁이 난다.

고갯길은 56㎞로 그 중 40㎞는 파키스탄, 나머지는 아프가니스탄 영내에 있다. 길가 흙벽집엔 아프리디족이 산다. 옛 문헌에는 이들은 아무도 믿지 않으며 언제나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기록돼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이들에게 ‘부족 영토’를 인정해주고 있다. 대가족 제도를 유지하고 있어 토박이인 하지 카불 한(42)의 집에는 형제 가족 등 23명이 살고 있었다. 이들의 종교는 대부분의 파키스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수니파 이슬람교.

란디코탈은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마을로 인구는 1만5000명. 하야트 나지르(26)라는 청년이 “컴퓨터”란 말을 연발하며 안내한 곳은 자신이 차린 컴퓨터 강습소였다. 초등학생들이 자판을 두드리며 문서작성 프로그램을 열심히 익히고 있었다.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