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승리했어요'
8일 이란 대선에서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압승을 거둔 최대 요인은 여성과 청년층 유권자들이 1기 하타미 정부가 추진했던 개혁개방 정책을 열렬히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하타미 대통령은 과거 보수파의 저항과 견제로 미진했던 개혁 개방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79년 혁명으로 이슬람공화국이 수립된 후 20년이 지나면서 강렬해진 민주화에 대한 갈망을 정책을 통해 매끄럽게 수렴하는 일이 2기 하타미 정권의 최대 과제이다.
그동안 하타미 대통령측이 추진해온 공기업 민영화 등 경제 개방 정책, 의복과 문화활동 등 일상 생활을 규제하는 각종 조치의 개혁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대학생들이 99년 7월 개혁을 요구하며 이슬람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를 벌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라크와의 전쟁, 미국의 경제 제재 조치로 순탄치 못한 경제를 살리는 문제도 하타미 정권이 안고 있는 과제 가운데 하나다. 지난 회계연도(2000년 3월∼2001년 3월) 이란은 120억달러의 무역흑자와 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성장의 결실이 고루 분배되지 않고 있는 데다 최근 물가상승률이 25%, 실업률이 20%에 달해 사회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하타미 대통령은 1기 때의 활발한 외교활동 성과를 바탕으로 조만간 미국을 방문해 경제제재 조치 해제와 자본 유치 등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참패한 보수파가 2기 하타미 정부를 더욱 강력하게 견제할 가능성도 있다. 사법부와 군, 경찰 등을 여전히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통수권을 쥔 이슬람 최고 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와 전직 대통령 알리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가 장악한 국가수호위원회(상원에 해당) 등이 보수파의 중심에 서 있다.
그렇지만 이란의 보수파와 개혁파의 대립이 이슬람공화국의 해체 등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이는 하타미 대통령이 선거유세에서 강조했듯이 개혁파 또한 보수파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전제 아래 사회 개혁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타미는 누구? …개혁파 대표주자▼
이란 대통령에 재선된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58)은 이슬람 성직자이지만 독일 유학과 신문 발행 경력 등을 지닌 이란 내 개혁파의 대표 주자다.
대학에서 종교학과 미학을 전공한 그는 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연구활동을 하며 현지 이슬람 사원의 사제를 지냈다. 혁명 후 귀국해 고향인 아르다칸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또 일간지 카이한의 발행인을 맡았다. 82년과 89년 두 차례 문화부장관을 지내며 개방정책을 펴다 보수파의 압력 때문에 92년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국립도서관장 등을 지내며 이슬람 문화 연구에 몰두하다 97년 개혁파의 추대로 대통령 후보가 됐고 70%의 절대적 지지로 대통령에 올랐다.
그는 대통령 재임 중 이슬람 공화국 수립 후 이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유럽 아시아 중남미 등을 순방하며 이란을 국제적 고립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일간지 카이한을 접수하는 등 보수파의 강력한 견제 때문에 그가 추진한 각종 개혁 정책의 성과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청년과 여성층은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는 “내 취미는 요리이며 부인이 사실상 우리 집 가장”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적도 있다. 가부장적 이슬람 전통에 눌려온 이란 여성은 그의 개방정책을 강력하게 지지해 지갑 속에 그의 사진을 항상 넣고 다닌다는 말도 있다. 부인 조흐레 사데키(50)와의 사이에 2녀1남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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