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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김정안]서울대 '불신의 시대'

입력 | 2001-06-10 19:19:00


서울대가 심상찮다. 총장의 거취문제까지 거론하며 기초학문 분야 지원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던 인문 사회 자연대 교수들은 ‘제2의 강경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사범대는 교수후보 전원의 임용이 부결된 것에 항의, 보직교수들이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다. 교수협의회도 이들의 입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그뿐만 아니다. 물리교육학과 학생 전체가 총장을 상대로 소송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인문대 등은 법대 의대 경영대 학부폐지론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해당 대학들은 강한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단과대와 대학본부, 단과대끼리, 교수와 학생, 학생과 대학당국 간의 갈등과 마찰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이 와중에서 이기준(李基俊)총장은 8일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학교 운영과 향후 방향에 대해 여유있고 확신에 차 있는 듯이 보였다.

“취임(98년 11월) 직후 매킨지사의 컨설팅을 받았어요. 과반수를 넘는 수준 이하의 논문, 열악한 재정사정…. 세계 수준의 대학이 되기 위해선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요컨대 현재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대학 운영방향이 불가피할뿐더러 옳기도 하다는 판단인 것 같았다.

그러나 학생과 일반교수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심각하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 어떤 과목이 신설되길 원하는지, 본부와 대화할 수 있는 창구가 전혀 없어요.” 7일 오후 교내 문화관에서 열렸던 ‘교수 학생 공개토론회’에서 어느 학생이 한 말이다.

한 교수는 “형식적인 토론절차만을 남겨놓고 이미 결정된 사항을 공문으로 내려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진정한 대화와 토론문화가 실종됐다”고 불평했다.

총장의 ‘확신’이 대학 구성원에게는 ‘위기감’으로 와닿는 이유는 뭘까. 상호간의 신뢰가 위태로울 만큼 얇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불신의 골이 깊어져 있는 조직에서는 ‘기회’도 ‘위기’가 될 수 있다.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