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에 관한 한미간 양허록은 한미행정협정(SOFA)보다 더 심한 불평등 협정이다. 한국 정부가 담배에 세금 또는 부담금을 부과하거나 광고 규제를 하려면 이 양허록에 의해 일일이 미국과 사전 협의를 해야 한다.
88년 이처럼 굴욕적인 양허록이 체결된 것은 수입담배가 뚫고 들어오기 어려웠던 시장 장벽 때문이었다. 한때 양담배를 피우면 범법행위로 처벌했고 그 뒤에도 양담배를 내놓고 피울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오래 지속됐다.
지금은 수입담배의 시장점유율이 18%에 이른다. 미국에 자동차와 반도체를 팔기 위해서는 미제 담배의 시장점유율이 어느 정도 유지돼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을 만큼 한국시장에서 수입담배가 공평한 대우를 받는다. 이제 시대착오적인 한미간 담배양허록을 개정 또는 폐기할 시기가 됐다.
정부는 7월부터 무관세 품목이던 수입담배에 40%의 관세를 매길 계획이나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압력을 넣는 USTR의 배후에는 잇따른 손해배상 소송과 각종 규제로 자국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미국의 담배제조업체들이 있다.
담배사업법이 개정돼 7월부터 담배제조업에 외국인 투자가 허용된다. 영국계 BAT, 미국계 필립모리스 등이 벌써 한국 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담배제조 독점이 풀리는 마당에 관세법에 정해진 대로 수입담배에 기본세율 40%를 적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은 수입담배에 7∼9%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한국은 수입담배에 계속 무관세를 적용하라는 것은 이만저만한 억지가 아니다. 수입담배의 비중이 미미할 때는 참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시장점유율이 20%에 육박하는 터에 더 이상 양보해서는 안 된다. 수입담배에 55%의 관세를 부과하는 유럽연합(EU) 국가들에 비하면 높은 것도 아니다.
미국과 일본 유럽 국가들은 중독성 건강유해 물질인 담배에 대해 관세 연방세 주세 판매세 등 각종 세금을 부과해 소비를 억제하고 있다. 한국은 담배양허록에 묶여 가격과 세금을 자유롭게 정하지 못해 담뱃값이 이들 나라에 비해 2분의 1 내지 3분의 1 정도로 싸다. 담뱃값이 싸 청소년 흡연을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이번 한미간 통상협의는 단순히 특정 상품에 대한 관세 부과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담배제조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한국인의 건강과 관련된 정책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