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아쉽지만 열정은 확인했다. 농구와 달리, 한두 점의 엄숙함으로 격전을 벌이고 야구와 달리,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격렬함을 자랑하며 배구와 달리, 상대 진영을 마음껏 유린하는 축구. 엇비슷해 보이는 미식축구나 럭비에 비해 전후반 90분 내내 초원을 달려야만 하는 축구. 지난 한 주는 원시적인 공격 본능의 분출구인 축구의 묘미를 만끽한 주였다. 현대적 문명화가 진행될수록 우리 내면의 원시적 야성은 마모될 뿐이지만 다행히 축구가 있어 우리의 심신은 균형을 갖추는 것이다. 더욱이 몇 십미터 앞에서 격렬하게 맞부딪치는 전사들의 투혼을 만끽할 수 있는 전용구장 덕분에 지난 주는 아드레날린이 120% 솟구치는 축구미학의 제전이 되었다. 컨페더컵의 열기가 이럴진대 월드컵은 어떠할 것인가.
어쨌든 절반의 성공이다. 대표팀의 예선 전적도 그렇거니와 축구에 대한 관객과 시청자의 열정 역시 딱 절반만 성공했을 뿐이다. 막대풍선도 사라졌고 저질의 야유와 물병 던지기도 줄었지만 솔직히 너무 얌전한 관전이었다. 내내 일어서서 응원했더라면 좋았을 것이요 저질스럽지만 않다면 상당한 수준의 야유도 홈 팬만이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이므로 마땅히 행사했어야 옳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다른 나라 경기에 대한 무관심이다. 불과 몇 천명. 빈자리는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곧 시작할 국내 정규 리그부터 걱정이다. 선수 가족과 코치진만이 관람하는 유소년 축구는 말해 무엇하랴.
그러니까 저 티벳의 스님에게서 배우자는 말이다. 티벳 불교의 종교 개혁자인 키엔츠 왕포의 7대 환승으로 알려진 괴짜 감독 키엔츠 노부의 영화 ‘컵’은 히말라야의 장엄한 사원 속에서 월드컵에 열광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승복 밑에 호나우두의 등번호를 새겨넣은 동자승 오기엔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드라마는 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히말라야 사원까지 불어닥친 월드컵 열기를 다룬 것으로 이미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티벳어로 만들어진 최초의 장편영화이자 출연 배우들이 모두 실제 승려라는 점. 촬영 기간 내내 티벳불교의 존경받는 예언자, 명상가, 선승의 조언과 택일을 따랐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월드컵을 보려는 스님들의 열기가 어느 순간부터 진지한 고행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축구에 대한 열정의 깊이를 확인하게 만든다.
정윤수/스포츠문화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