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반 동기… 엇갈린 명암 …"30년만에 첫 공동작업"
연극연출가 이윤택과 영화배우 하재영. 한명은 연극계를 휘집고 다니는 야수처럼, 다른 한명은 영화계를 비추는 은은한 달빛처럼 그렇게 30년을 ‘딴따라판’에서 살아왔다.
1952년 용띠생인 두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72년 서울 남산의 서울연극학교(지금의 서울예대)에서였다. 동기생인 두 사람은 연극계의 살아있는 전설 오태석이 담임교수인 연극반 A반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재영이는 우리들과 달리 그때부터 귀티가 흘렀어요. 신사같고 귀족적인 풍모였지요.”(이윤택)
“윤택이는 정말 연기 연출 대본,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재주가 많은데다 워낙 괴짜여서 나처럼 평범한 놈은 기죽기 알맞았죠.”(하재영)
서로 겉돌던 두사람은 바로 시작부터 엇갈렸다. 2학기 등록금을 마련못한 이윤택은 연극운동을 한다며 학교를 떠났고 하재영은 착실히 학교를 마치고 오태석사단의 일원이 됐다.
인생의 빛이 먼저 찾아온 것은 하재영이었다. ‘태’와 ‘춘풍의 처’ 등의 연극무대에 섰던 그는 미국 유학을 갔다온 고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년작)으로 영화에 데뷔한 뒤 잘나가는 영화배우가 된다.
하재영이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70년대말 부산 광복동 번화가 길 한복판에서 두 사람은 우연히 다시 만났다. 무위도식하던 이윤택은 자신의 처지가 너무 부끄러워서 짐짓 모른 척 지나치려는데 하재영이 “너 윤택이 맞지”하면서 반갑게 악수를 건넸다.
이윤택에겐 그 만남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난 재영이가 너무 부러웠어요. 내가 꿈꾸던 하길종 같은 사회파 감독에 의해서 선택받은 배우가 됐다는게. 그런데 내 얼굴도 기억못할 것 같은 이 친구가 내 이름까지 정확히 기억하며 ‘너 지금도 연극하지’라고 묻는 말에 ‘아직 늦지않았구나’하는 용기를 얻었어요.”(이윤택)
한동안 방황하던 이윤택은 이후 다시 연극판에 인생을 걸 생각을 하게됐고 스승인 오태석 못지않은 연극연출가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반면 하재영은 전성기를 지난 배우로 그늘 속에 가려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세번째 만남은 더 극적이었다. 광복동의 만남 이후 20년간 연락이 없던 하재영이 지난해 이윤택이 연극촌을 세운 경남 밀양에 불쑥 나타난 것.
“저는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죠. 그런 상태에서 윤택이가 연극촌을 세웠다는 말에 젊은 시절 우리가 서울예대가 있는 남산 고개를 함께 올라갈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보고 싶었습니다.”(하재영)
이윤택은 뜻밖의 손님에 반가운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올 가을 이윤택의 영화 감독 데뷔작인 ‘오구’에서 감독과 배우로 첫 공동작업을 한다.
이들은 “좋은 시절 다보내고 나이 쉰이 다 돼서야 함께 첫 작업을 하게 됐다”며 아쉬워 했지만 서로 희끗해진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웃는 두 사람의 우정은 더없이 훈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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