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국의 기자들이 홍콩에서 미국계 자산운용사 피델리티의 임원들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한국 진출을 준비중인 그들과 한국의 간접투자 시장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한 기자가 “한국 투자자들을 만족시키려면 무척 힘들 것”이라는 얘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99년 증시 활황 때 연간 수익률이 100%를 넘던 몇몇 펀드가 지난해에는 40% 가량 손실을 보는 바람에 투자자들이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피델리티 임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2년을 합하면 수익률이 60%인 셈인데 뭘 더 바라느냐는 얘기였다. 지난해 종합주가지수 하락률이 50%였다는 말을 듣자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종합지수 하락률보다 손실률이 낮았다면 그 펀드는 매우 성공적으로 운영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마디로 한국의 투자자들은 너무 ‘volatile(변덕스러운)’하다는 반응이었다. ‘냄비근성의’ ‘심하게 변동하는’ 등으로도 해석되는 이 단어는 이틀간의 미팅동안 가장 자주 등장했다. 그들은 한국의 투자자들 뿐 아니라 한국시장에서 진행되는 모든 현상이 너무나 쉽게 변하곤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한 임원은 한국 정부의 개혁의지가 변한건 아니냐고 물었다. 한동안 적극적인 구조조정으로 신뢰를 주더니 갈수록 구조조정 속도가 더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 나아가 “대통령이 바뀌면 개혁 정책도 원칙에서부터 바뀔 가능성이 높지 않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이렇게 변동성이 심한 한국시장에 왜 들어오려하느냐고 한 기자가 물었다. 아태지역 대표인 브랫 구딘은 “몇 가지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중 하나로 꼽은 것이 외국계 기업의 잇따른 진출이었다. 외국기업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국 시장이 차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리고 기자들의 이야기가 과장없는 현실이라면 피델리티의 경우 당장의 수익을 노리기보다는 우선 한국 투자자들의 간접투자에 대한 생각을 ‘선진화’하는데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한국만큼 변동성이 심한 홍콩에서도 수년간의 노력 끝에 간접투자를 정착시켰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의 장담이 현실로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국 시장을 이해하려 애쓰고 근본적인 문제부터 접근하려는 태도는 높이 살만했다. 수익률이 높을 때는 ‘수익률 조기달성’ ‘경이로운 수익률’ 등 온갖 선전 문구로 요란을 떨다가 수익률이 형편 없을 땐 “대박만 바라는 투자자들이 문제”라며 화살을 돌리는 국내 업체들과는 다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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