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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인터넷에는 '외딴 섬'없다

입력 | 2001-06-12 18:31:00

인터넷을 즐기는 마라도의 한 주민(왼쪽).'마라별장' 주인 김영호씨.


‘섬’은 함부로 침범할 수도, 그 안에서 쉽게 도망칠 수도 없다. 바다라는 보호막, 혹은 장애물은 섬을 ‘육지와는 다른 공간’으로 만들어왔다. 동서양 소설가들은 외부세계로부터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켜질 수 있도록 지상낙원 ‘율도국’과 ‘유토피아’를 섬으로 설정했다. 섬은 거꾸로 죄인을 격리하는 유배지였다. ‘빠삐용’이 갇혔던 형무소도 ‘악마의 섬’이었다.

‘고립’의 상징인 섬에 인터넷이 들어왔다. 배가 끊긴 시간에도 마라도 주민들은 e메일을 보내고, 헬기조차 안뜨는 날씨에도 울릉도 주민들은 가격비교를 해가며 인터넷 쇼핑을 즐기고 있다. ‘인터넷에는 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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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남단 송악산선착장. 파도가 높아 배가 못뜰까 걱정했지만 유람선은 출렁거리면서 수평선을 향해 나갔다. 이 배는 하루 5∼7회 제주도와 마라도를 오간다. 오전9시반 전과 오후4시반 이후에는 들고 나는 대중교통편이 없는 셈.

제주에서 뱃길로 30분 거리인 마라도는 잔디밭에서 축구공 한번 세게 차면 공이 바다로 빠질만큼 아담한 섬. 성당 절 교회 등대가 있고 발전용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최남단 섬은 외지인의 눈에 ‘동화나라’처럼 비쳤다. 인구는 80명 남짓.

선착장에 인접한 ‘마라리복지회관’ 2층.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 5대가 ‘바다를 바라보듯’ 자리잡고 있다. 첫배 오기전과 마지막배 나간후한가할때 주민들이 이용하는 것이다.

한국인터넷정보센터에 따르면 3월말 현재 제주도의 인터넷이용률은 55.4%로 서울(55.2%)보다 앞선 전국1위. 마라도 주민들은 복지회관에서 128Kbps의 ISDN(한국통신)이나 512K의 데이콤 전용선을 이용하고 있다. 인터넷에 관한 한 ‘외딴 섬’이 아닌 것. 학생수 3명인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에도 256Kbps 속도의 인터넷이 가능하다.

회관 바로 옆 민박집 ‘마라별장’의 주인 김영호씨(39)가 마침 게시판을 확인하러 회관에 들렀다.

“원래는 단골손님 위주로 알음알음 영업을 했어요. 마땅히 홍보할 방법도 없고…. 그러나 인터넷에 홈페이지(marado.pe.ky)를 열고부터는 손님의 40% 쯤이 그걸 보고 찾아오는 분들이에요. 월평균수입도 덕분에 30∼40%는 늘어났어요.”

김씨는 2, 3일에 한두번씩 회관에 들러 e메일답장을쓰고 낚시정보 등을 업데이트한다.

“사이트는 친구가 만들어줬어요. 저는 독수리타법으로 글 올리고 지우는 정도만 할줄 알죠. 사진을 최근 것으로 바꾸고 메뉴도 늘려야 하는데…. 여름성수기가 지나면 작정하고 홈페이지 제작을 배워볼라구요.”

마라보건진료소장 석경옥씨(37) 역시 업무를 보는데 회관의 인터넷을 쓰고 있다. 남제주군청의 고지사항을 인터넷을 통해 챙기고 다른섬의 보건소장들과 e메일로 연락하고 있다.

마라도를 떠나 다시 북제주군 고성1리로 향했다. 제주도 2개 군에는 총172개 마을(리)이 있다. 마을마다 마라리회관과 같은 리사무소, 초고속망이 깔린 컴퓨터3대, 프린터, 스캐너가 있다. 172개 마을 모두 도청홈페이지에 링크된 마을 홈페이지(www.cheju.go.kr/vill/menu/villmain1.html)를 운영한다.

고성1리 상근사무장 박은영씨(30)는 “올초 도에서 추진한 마을정보센터가 구축된 후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홈페이지에 마을의 경조사나 읍사무소에서 내려온 ‘하작물 파종 신청’ 공고를 빼놓지 않고 올리기 때문이다.

“도에서 마을 사무장들에게 해주는 컴퓨터·인터넷교육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누가 보기나 할까’싶었는데 올초에 ‘육지에 사는 고성출신인데 고향소식을 계속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메일을 한통 받고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이후 박씨는 부녀회, 청년회 등을 샅샅이 ‘취재’하며 마을의 모든 소식을 올리고 있다. 박씨가 ‘약간’만 도와주면 주민들은 민원서류를 읍사무소까지 안가도 뗄 수 있고, 감귤시세와 날씨정보도 거의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팩스나 우편으로 오던 공문도 이제는 주로 e메일로 주고받는다.

‘마을정보센터’는 제주도청이 6개월여간 10억원을 들여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사업. 육지의 다른 시군에서도 이를 벤치마킹 하려고 많이 찾아왔지만 따라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를 제주도청 정보정책담당 김홍두사무관은 이렇게 설명했다.

“제주도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리사무소를 그대로 이용했어요. 마을마다 공간이 있고 운영할 상근사무장이 있다는 점을 십분 활용한 것이지요. 또 전해내려오는 지명유래 야사 동식물 관광자원 등이 워낙 풍부해 콘텐츠의 질이 자연스럽게 보장됐거든요. 향토사학자들 연구에도 참고가 많이 된다고 합니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3월말 제주 4개시군의 전자결제율은 85.7%. 전국평균 50.6% 보다 훨씬 높다. 제주도와 마라도는 바다에 ‘고립’된 섬이 아니라 바다로 향하는 ‘포털’이었다.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