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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인터뷰]'로펌'변호사역 서정 '브라운관 녹여버릴듯…'

입력 | 2001-06-12 18:32:00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노라면 ‘참 사연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섬’에서 한적한 낚시터를 말없이 지키고 서서 그곳에 숨어드는 남정네들의 사연을 단박에 꿰뚫던 그녀의 숨막히는 눈빛 때문이었을까.

지난 한해 한국영화 중 가장 많은 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섬’의 여주인공 서정(27). 판타스포트토 국제영화제에선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던 그녀의 눈빛이 이젠 브라운관 속에서 타오르고 있다.

서정은 지난주 시작한 SBS 미니시리즈 ‘로펌’(극본 박예랑, 연출 정세호)의 여변호사 윤진 역으로 TV에 데뷔했다. 극중 윤진은 부자집 딸에다 말로선 누구한테 져본 적이 없다는 엘리트 여성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윤진 역은 다른 여자 탤런트가 맡았다면 톡톡 튀고 발랄해야 할 배역이건만 서정을 만나곤 이끼가 잔뜩 낀 깊은 연못속 바위처럼 침잠한다. 단말마적 비명 외엔 대사 한마디 없던 ‘섬’과 달리 달변을 자랑하는 변호사인데도 말이다.

문제는 역시 그놈의 눈빛 때문이다. 젊은 처자가 무슨 사연이 그리도 많은 눈빛을 지닌 것일까.

그녀를 직접 만나고 나서 의문이 절반쯤 풀렸다. 무척 작은 얼굴, 22인치의 가는 허리, 언제나 종아리를 덮을 듯 말듯한 미디스커트차림의 그녀는 평범하지 않은 청춘을 보냈다.

졸업장을 받았는지 말았는지도 기억 못할 여고시절. 말못할 사고로 학교는 거의 다니지 못했고 프랑스문화원 등을 다니며 혼자 예술영화를 즐겨 봤다고 한다. 연기라곤 정식으로 배워본 적도 없이 ‘그저 영화가 좋아’ 독립영화판에 뛰어들었고 4년간 언더그라운드 배우로 살았다.

진짜 연기를 하고싶어 1999년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오디션에 참가, 유부남인 설경구와 불륜의 관계를 맺는 미스리역으로 발탁됐다. 이 때의 짧지만 육감적 모습이 ‘섬’(김기덕감독)의 희진역으로 이어졌다.

이 드라마의 정세호 PD는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서정을 처음 봤는데 건방져 보이는 게 맘에 들어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김의석 감독의 조선시대를 무대로 한 무협영화 ‘청풍명월’에도 캐스팅된 상태.

그녀의 연기는 아직 어색한 부분이 많다. 대사 처리가 반박자쯤 느리고 상대 배우와의 호흡도 어색하다. 그럼에도 내로라하는 연출가들이 그녀를 탐내는 이유는 그 ‘눈빛’ 때문은 아닐까.

고건축물 감상을 즐긴다는 취미조차 세월의 이끼가 앉아있다. 특히 뭔가 기운이 느껴져 종묘를 자주 찾는다는 답변에서는 그녀의 몽환적 분위기가 그대로 뭍어났다.

젊은 날의 열정이 뜨거울수록 신앙심도 깊어지던가. 딸만 넷인 집안에 셋째딸인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문화선교’가 평생의 꿈이란다.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