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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메지에르 "北지원 대가로 개방 요구해야"

입력 | 2001-06-12 18:48:00

메지에르(왼쪽) 박응격


《방한중인 로타어 드 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61)가 12일 동아일보사 20층 접견실에서 박응격(朴應格·57) 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장과 독일 통일이 한국에 주는 교훈 등을 주제로 특별대담을 했다. 메지에르 전총리는 “독일 통일 이후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지만 분단된 민족을 하나로 결합시켰다는 역사적인 의미와 비교하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독일 통일이 한국에 주는 교훈은 북한의 고립을 하루빨리 탈피하도록 도와주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메지에르 전총리는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동독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자유선거를 통해 총리가 된 뒤 통독 직전까지 4개월간 재임하며 통일작업을 지휘했다. 그는 이날 오후 독일 통일에 기여한 공로로 한양대에서 정치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13일에는 민족통일연구원 주최 학술세미나에서 ‘동서독 정상회담’을 주제로 강연한다. 》

▽박응격 소장〓최근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가 현안이 되고 있다. 일본의 대응은 나치시대에 저지른 범죄행위를 반성하기 위해 강제노역을 시킨 기업들과 보상작업을 서두르고 있는 독일 정부의 조치와는 대조가 된다.

▽메지에르 전총리〓독일인은 과거의 잘못을 정확히 알아야 현재와 미래의 관계를 바르게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 때문에 프랑스와 동유럽 국가, 이스라엘 등 독일이 과거 고통을 준 국가들과 적극적인 화해 정책을 추구해왔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다는 것은 당연한 의무일 뿐만 아니라 후손의 짐을 덜어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꼭 경제적인 보상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독일 정부는 정신적인 보상책 마련을 위해 사회학자들까지 참여시키고 있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해야 한다.

▽박〓최근 북한이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과 일제히 외교관계를 수립해 주목된다. 이런 움직임이 한반도 긴장 완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북한의 인권문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메지에르〓한반도 통일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북한이 고립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과거 동독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된 데에는 서독 정부의 적지않은 노력이 있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을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가로 반드시 북한에 대해 개방과 민주화를 요구해야 한다.

▽박〓그렇다면 북한의 개방을 위해 한국은 어떤 방식으로 북한과의 교류를 촉진하고 통일정책을 추진해야 하는가.

▽메지에르〓우선 북한을 포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서독과 마찬가지로 한국내에도 통일 비용과 통일 후 찾아올 부작용을 우려해 통일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50년 동안 치른 분단 비용과 비교할 때 통일 비용은 오히려 하찮은 것일 수 있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도대체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한반도 통일과정에는 이웃국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박〓당장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독일과 같이 과거청산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통일 후 동독 비밀경찰인 슈타지 등에 대해 비교적 철저한 과거 청산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최근 귀하는 과거 정권하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 사면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메지에르〓전쟁과 통일 후에는 항상 이런 문제가 제기돼 왔다. 중범죄자는 반드시 법을 통해 처벌해야 하지만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불법적인 행위를 합법적으로 처리한다는 것은 하나의 딜레마이다. 그러나 법치국가가 보복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넬라 전대통령은 25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정적을 법으로 처단하지 않고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 하나의 모델을 보여줬다.

▽박〓귀하는 비올라를 연주하는 음악가에서 갑자기 총리가 됐다. 무명 인사에서 일약 동독의 최고 지도자로 부상했는데 당시 소감이 어떠했는가.

▽메지에르〓나는 10년 동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약하면서 동독 민주화과정에서 기소된 사람들을 변호하는 활동을 했다. 당시 자유총선으로 구성된 인민의회와 내각의 구성원들도 동독의 교회에서 동독체제를 함께 고민했던 사람들이었다. 어려움 속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고생을 했기 때문에 총선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독일 통일의 중요한 과정에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박〓그러나 통일의 결과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동독의 마지막 총리로서 서독과 통일조약을 체결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메지에르〓나는 세 딸에게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 흡수 통일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동독 주민이 살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당시 경제붕괴가 심각했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경제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신속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그 심경을 이해할 것 같다. 10월이면 통독 11돌이 된다. 11년이 지났지만 과거 동독 주민의 통독에 대한 평가는 서독 주민과는 다른 것 같다.

▽메지에르〓통일은 동독 주민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급변하는 사회체제와 생활양식에 적응하느라 고통을 겪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 구동독 주민중 70%가 통일의 결과에 만족하고 있고 20%는 중간적인 시각을, 5∼10%만이 불만을 나타냈다. 이 중 불만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과거 정권에서 권력을 잡았던 사람들이다. 이런 결과가 전체적으로 통일의 방향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박〓독일 통일이 가진 의미는 국제간의 분쟁이나 동서독간 유혈사태 없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통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정치세력화되지 못했는가.

▽메지에르〓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동독 사회에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그룹이 형성됐고 이후 재야단체와 기독교계가 참여하면서 공산당체제의 무질서를 막기 위해 원탁회의가 구성됐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새 체제에 대한 개념이나 계획이 없었다. 특히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총선에서 불과 2.9%의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 당시 동독 마지막 정권의 각료중 변호사와 의사 등은 본래의 직업으로 돌아갔고 2, 3명만이 아직도 연방의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통일과정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메지에르〓통일 후 신속하게 동서독간 경제적 평등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는데 성급한 판단이었다. 그리고 동독 주민이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는 데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동독 주민의 사회적 통합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경제적 평등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박〓최근 한국 교포 소녀가 극우파로부터 테러를 당하는 등 독일내 외국인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메지에르〓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극우파가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구동독 지역의 젊은이들이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로 바뀐 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해결책으로는 교육과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등을 해야 한다. 최근 외국인과 망명객들이 독일 사회로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는 점도 극우파의 목소리가 커지는 중요한 요인이다.

stern100@donga.com

▼메지에르 前동독총리 약력▼

△1940년 베를린 출생

△1969년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 졸업(비올라 전공)

△1975년 훔볼트대 법학과 졸업

△1975년 베를린방송 심포니 단원

△1976∼1986년 반체제 인사에 대한 변호 활동

△1987년 동독 기민당(CDU) 교회위원회 상임위원

△1989년 11월 동독 기민당(CDU) 총재

△1990년 4∼10월 동독 총리로 독일통일조약 체결

△1991년∼현재 변호사

▼박응격 한대 자치연구소장 약력▼

△1944년 전남 영암군 출생

△1968년 연세대 행정학과 졸업

△1970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1979년 독일 슈파이어대 행정학 박사

△1981년∼현재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1999년 3월∼현재 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장

△2001년 3월∼현재 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장

△저서 ‘도시 및 지방행정론’ ‘인사행정론’ ‘통일의 저력’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