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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극복 전국이 구슬땀]목타는 들녘에 한방울도 '금'

입력 | 2001-06-12 19:08:00

' 비를 내려 주소서'


‘물이란 물은 다 끌어다 쓴다.’

계속되는 가뭄에 물 한 방울이 금쪽 같은 농부들. 이들은 밥 짓고 빨래하는 물까지 아껴가며 논물을 대고 있다. 허드렛물은 물론 공장 폐수까지 걸러 타는 들녘으로 내보내고 있다. 심지어 돈을 주고 물을 사오기도 한다.

▽수돗물 논으로 보내기〓지난달 10일부터 ‘자진 제한급수’를 실시하고 있는 충북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중로마을. 주부 성복선(成福先·45)씨는 밥짓는 물을 쓰는 데도 조심스럽기만 하다. 수돗물을 아껴 비축한 간이상수도 급수장 물을 들녘으로 흘려보내고 있기 때문.

이 마을 28가구와 인근 상로마을 23가구 등 51가구는 한 달이 넘도록 오전 9∼10시, 오후 1∼2시, 밤 9시∼이튿날 오전 2시 등 매일 3차례 단수하는 등 제한급수를 해왔다. 그래도 불평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 마을은 이렇게 해서 인근 7000여평의 논에 물을 대 모내기를 무난히 마칠 수 있었다.

▽군부대 오폐수 이용하기〓11일 오후 1시 충남 공주시 반포면 국곡리 육군 제32사단 정문 앞. 이 사단 공병대대 장병 10여명이 부대 오폐수 시설에서 나오는 물줄기를 국곡리 논 쪽으로 돌리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 부대에서 나오는 생활오폐수는 하루 1020t으로 약품처리 등 1차 정화과정을 거쳐도 농업용수로는 부적합한 상태. 군부대는 95년 가뭄이 심해지자 고심 끝에 수중보를 설치하고 이곳에 수질 정화식물인 부레옥잠 수십만 포기를 길러 오폐수를 한번 더 걸러냈다. 군부대는 이때부터 국곡리 1만여평의 논에 매년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올해도 가뭄이 시작되자 지난달 24일부터 인근 안산천으로 흐르는 물꼬를 국곡리 논으로 돌려 매일 1000여t의 물을 보내주고 있다. 최근에는 양수기를 동원해 국곡리 고지대에 있는 밭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공장 폐수 정수공급〓울산 울주군 삼남면 가천리와 상천리 일대 들녘. 이곳은 아무리 심한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는 법이 없다. 인근 삼성SDI 공장에서 산업폐수를 정수처리해 충분한 물을 대주고 있기 때문이다.

컬러 브라운관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산업폐수는 하루 1만9000여t. 이 가운데 1만여t은 재활용하고 나머지 9000t은 회사내 폐수처리장에서 3단계 정수 처리된다. 정수된 물은 회사 뒤편 강당마을에 하루 3000∼4000t씩, 회사 앞 상천마을과 연봉마을에 4000∼5000t씩 회사측이 만든 농업용수로를 통해 공급된다.

▽돈 주고 물대기〓경북 봉화군 명호면에서는 타들어가는 논밭을 보다 못한 농민들이 돈을 주고 급수차를 동원하고 있다. 이달 초부터 16t급 탱크로리를 운행하는 장모씨(29)에게 대당 5만원을 주고 모내기용 물을 공급받고 있는 것.

장씨가 지난달 이곳에서 농사짓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급수차를 몰고 오자 이를 본 농민들이 ‘우리 논에도 물을 대 달라’고 부탁하게 됐다. 그는 인천에 사는 친지의 급수차까지 동원해 5일부터 부지런히 논물을 나르고 있다. 물기가 남아 있는 논 한 마지기(300평)의 모내기를 하는 데 필요한 물은 급수차 2∼3대분 정도.

명호면 고감리 김상철씨(54)는 “최근 급수차 6대분의 물을 사 논 1500평에 모내기를 마쳤다”며 “일평생 돈 주고 물을 사서 농사짓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cavat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