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 찬호는 태어날 때부터 아빠를 많이 닮았다. 찬호는 커가며 엄마의 얼굴 모습이 나타난다는 말을 들으면 곧바로 얼굴 표정이 굳어지며 “아니야”라고 소리친다. 찬호는 95년 돼지해에 태어났지만 용띠라고 우긴다. 아빠가 용띠이기 때문에 자기도 무조건 용띠란다.
엄마의 따뜻한 품을 그 무엇보다 좋아하면서도 엄마가 어쩌다 목소리 높여 아빠를 핀잔주거나 구박하려고 할 때면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엄마를 향해 이렇게 외쳐댄다.
“엄마, 아빠 미워하지? 유치원 선생님한테 또 이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의 어린 시절도 찬호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내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그렇다.
아버지 어머니가 어느 날 다투시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다고 대문 쪽으로 향하셨을 때 “아빠, 우리 들어가자”고 얘기했단다. 엄마는 나가든 말든 아빠와 나만 집안으로 들어가면 된다는 뜻으로 나 또한 확실한 아빠 편에 서 있는 아이였다.
졸리고 짜증날 때나 몸이 아플 때 어김없이 엄마 품에 안기는 찬호. 그러나 아빠와 공을 차고 킥보드를 탈 때나 수영장에서 함께 수영을 하며 뿌듯한 표정을 짓는 아이…. 이 모든 것이 찬호의 모습이다.
나 역시 어릴 적에 항상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당신의 손과 내 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함께 넣고 걸으셨다. 아버지의 손은 왜 그리도 큰지, 어쩜 그렇게도 따뜻한지, 아버지와 함께 걸을 때의 그 푸근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또 퇴근해 집에 오시면 언제나 나를 안아주시며 높이 들어 올려 천장에 머리를 닿게 해 주시던 아버지, 꺼끌꺼끌한 수염으로 뺨을 간질이시던 아버지. 그리고 그 어떤 의자보다 편안했던 아버지의 책상다리, 지금도 마음 속 깊이 새겨진 소중한 사랑의 기억이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은 수레의 양쪽 바퀴와 같다. 아이에게 엄마의 사랑이 상대방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배려, 너그러움으로 느껴진다면 아빠의 사랑은 충만함과 삶에 대한 자신감으로 다가간다. 나의 두 아들이 지금 내 나이가 되었을 때 과연 아빠와 함께 했던 어떤 것들을 기억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