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사이언스북 스타트 운동’ 추진본부의 상임대표를 맡아 과학 대중화의 길라잡이로 나섰다. 3월 김영환 과학기술부 장관이 제안한 이 운동은 과학기술자들이 낙도와 벽지의 초등학생들에게 과학도서를 보내 과학자의 꿈을 키워주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금명간 사단법인 ‘과학사랑 나라사랑’이 공식 출범하면 범국민적인 과학문화 운동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자기 한계 인정하고 남 존중을▼
과학은 종교, 특히 가톨릭교회와 16세기부터 세계를 해석하는 방법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가톨릭의 우주관에 대한 최초의 도전은 1543년 폴란드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제창한 태양중심설이다. 무려 1500년간이나 천동설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그의 지동설은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왔다. 가톨릭의 저항은 극렬했다. 지구를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기존의 종교적 원리가 붕괴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1600년 지동설을 지지한 이유로 시인인 조르다노 브루노를 화형에 처했고 1616년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판금시켰으며 1633년 갈릴레오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로마 교황청은 360년 뒤인 1992년 갈릴레오를 복권시켰다.
19세기에는 생명의 기원을 놓고 신학과 과학 사이에 일대 혈전이 전개됐다. 1859년 찰스 다윈이 제창한 진화론이 성경의 천지창조에 근거한 창조론을 뿌리째 흔들어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과학은 종교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종교적 세계관은 권위를 상실했다. 20세기 들어 유례 없는 과학기술의 진보로 과학과 종교의 괴리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창조론자들의 반격은 1961년 미국에서 출간된 ‘창세기의 대홍수’로 본격화된다. 이 책은 빅뱅 이론을 부정하고 어린 지구 이론을 제시했다. 약 150억년 전에 일어난 대폭발에 의해 우주가 생성됐다는 빅뱅 이론과 달리 우주는 1만년 전 쯤에 창조됐다고 주장한다.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에 대해 지적 설계 가설로 맞섰다. 이들의 주장은 1991년 법학 교수인 필립 존슨이 펴낸 ‘재판을 받는 다윈’과 1996년 생화학자인 마이클 베히가 출간한 ‘다윈의 블랙박스’에 체계화되어 있다.
가령 베히는 세포의 복잡한 생화학적 구조는 진화론의 자연선택 과정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볼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정교하기 때문에 생명은 오로지 지적 설계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지적 설계란 과학으로 입증이 불가능한 지적인 존재, 즉 신의 손길에 의한 설계를 뜻한다. 요컨대 지적 설계 가설은 생명이 하느님의 창조물이라는 주장을 과학적으로 설득하려는 시도이다. 예전의 창조론자들처럼 맹목적으로 성경에 매달리는 대신 과학이 밝혀낸 사실을 아전인수식으로 원용하는 새 창조론은 창조과학이라 불린다. 성경 대신 과학을 무기 삼아 진화론을 공격하는 고등 전술의 창조론인 셈이다.
과학과 종교가 역사적으로 갈등 관계를 유지했지만 양자간의 대화를 추진하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1997년부터 미국에서는 과학자와 신학자들이 ‘과학과 종교 운동’이라 명명된 모임을 갖고 화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과학과 종교가 인류문화의 양대 자산이므로 갈등을 끝낼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1926년 펴낸 ‘과학과 근대세계’에서 앨프리드 화이트헤드가 갈파한 것처럼 과학과 종교는 경쟁 관계가 아닐 수 있다. 종교는 신의 섭리를 통해 정신세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반면 과학은 자연법칙을 통해 물질세계의 이해를 시도한다. 요컨대 과학과 종교는 신비로운 세계의 서로 다른 측면을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종교와 과학은 상대방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양쪽 모두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강변할 수는 없다. 과학과 종교 모두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면 충돌을 피하고 접점을 찾아낼 수 있을 터이다.
▼한손에 과학책 든 추기경▼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이나 과학 없는 종교는 절름발이”라고 말했다. 28일 팔순을 맞는 김 추기경도 아마 이런 심경으로 ‘사이언스 북 스타트 운동’에 앞장섰으리라. 한 손에 성경책을, 다른 한 손에 과학책을 든 추기경 할아버지의 사랑이 북녘 땅 어린이들에게도 전해지면 좋으련만.
(과학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