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왼쪽) 유호열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던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1년이 됐다. 지난 1년간 남북관계에 다소의 굴곡이 있긴 했어도 전체적으로는 괄목할만한 변화와 진전이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고려대 북한학과 유호열(柳浩烈) 교수와 세종연구소 이종석(李鍾奭) 연구위원의 대담을 통해 6·15 공동선언 이후 1년을 평가하고 향후 과제를 짚어보았다.
▽유교수〓6·15공동선언으로 남북당국은 다방면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남한사회 내부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됐고, 민간차원의 대북협력 가능성을 열었다.
▽이위원〓지난 1년간의 남북관계 개선노력은 분단 50년간의 움직임보다 더욱 많은 진전을 이뤘다. 그동안에도 남북대화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지난 1년은 우리 민족이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평화의 가능성을 모색한 한 해였다.
▽유교수〓6·15공동선언의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현 단계에서 국민이 느끼는 남북관계 변화에 대한 체감온도는 1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다. 북한이 변화했다면서도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거나 남한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위원〓객관적 지표로 볼 때 성과가 뚜렷하지만 남북관계 소강상태가 장기화되고 북한상선 영해침범 등으로 인해 체감의 차이가 생긴 측면도 있다. 정부가 설득하고 설명하는데 미흡해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한 탓도 있다.
▽유교수〓남북정상회담 이후 두드러진 현상의 하나는 남남갈등이다. 공동선언의 연합제와 연방제 통일방안의 공통성 인정여부와 ‘퍼주기’ 논란을 빚은 대북지원 문제는 보수와 진보간 이견을 불렀다. 이런 갈등은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이위원〓북-미대화의 시작은 남북관계의 환경개선 측면에서 중요하다. 남북간 장기소강은 남북관계 자체의 내재적 요인도 있다. 특히 금강산관광문제는 남쪽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영향을 북한에 미치고 있다. 김용순(金容淳) 아태평화위원장 등 대남협상파들도 현대가 유동성위기에 빠지면서 입지가 약화된 것 같다. 올들어 김용순 위원장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수행에 빠지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따라서 금강산문제가 해결의 가닥을 잡은 것은 남북관계에 내재한 대화 지체의 핵심 걸림돌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유교수〓금강산사업은 민간사업이면서 동시에 국가적 사업이라는 이중성이 있다. 따라서 관광대가 미납금은 현대가 책임지고 해결하고, 정부는 경의선 복원처럼 육로관광을 위한 사회간접자본을 지원해 정상화시켜야 한다.
▽이위원〓시장원리에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대 부실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금강산사업은 국가목표인 평화증진과 안보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정경분리 원칙을 금과옥조처럼 다뤄서는 안된다. 이제 개입여부를 따질 때가 됐다고 본다.
▽유교수〓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의 대북정책 성명에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특히 재래식무기 문제까지 협상의제에 포함시킨 것은 정치적 고려도 있겠지만 미국이 한반도 군사안보문제를 주도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위원〓부시 대통령의 성명은 클린턴 시대의 대북협상과 비교해볼 때 여전히 강경한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그러나 취임 초기와 비교해볼 때 변화가 보인다. 초기에는 국가목표인 미사일방어(MD) 체제 추진 명분을 얻기 위해 북한위협론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대화의사를 나타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유교수〓이위원의 말처럼 MD와 북한의 미사일 핵 등 대량살상무기를 경직된 상태로 연결시킨다면 부시 대통령 자신도 이 문제를 풀기 어려울 것이다.
▽이위원〓재래식무기 감축은 남북문제이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협상의제에 포함시킨 것은 잘못이다. 비록 미군이 주둔한다고는 하지만 북한의 위협을 거리로 따진다면 문제의 주체는 한국이기 때문이다.
▽유교수〓미국이 재래식무기 감축을 거론하면 북한도 주한미군 문제를 같이 거론한다. 현실적으로도, 당위적으로도 재래식무기 감축문제는 남북간에 해결해야 하고,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시간표가 만들어진 상태다.
▽이위원〓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문제는 북-미대화 재개와 남북관계 전반에 대해 얘기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답방을 하지 않는다면 잃는 것이 상당히 크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남북간 약속을 지켜보는 상황에서 답방이 안되면 북한의 대외관계 개선도 타격을 받게 된다.
▽유교수〓김 위원장 답방은 연내에 이뤄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답방 성사를 위해서는 북-미대화 진전과 남한의 경제적 대북지원 등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금강산관광도 있지만 대북전력지원 문제도 답방의 전제조건으로 중요한 것 같다. 또 답방시 남한에서 노골적인 반대 분위기가 없어야 이뤄질 것이다.
▽이위원〓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생각보다는 많은 요구와 조건이 오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상회담에서는 군사적 긴장완화에 대한 명시적 표현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유교수〓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없다면 남북문제는 그 자체로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내년에는 대선이 있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독자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가 목표를 보다 명확히 설정하고 지금까지 이룬 것을 제도화해야 한다. 특히 새 정부가 탄생하더라도 정책의 연결성을 고려해 대북정책의 투명성을 높임으로써 정치권과 여론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위원〓몇달간 남북간 소강상태를 경험하고 북한 상선이 영해를 침범하는 일도 있었다. 남북관계가 진전됐지만 당국간 신뢰구축에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공고한 대화체제 구축이 필요하다. 또 현정권이 2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제 현실적인 과제를 선정해 로드맵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와 함께 모든 정치세력이 참여할 수 있는 남북문제 개선을 위한 합의구조를 창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대북문제에 있어서는 역사 앞의 평가를 생각해야지 단기간의 여론을 의식하면 안된다는 점이다. 긴 안목으로 다양한 정책을 구사함으로써 여론을 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spear@donga.com
▼이종석 연구위원 약력▼
△성균관대 정치학박사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남북정상회담 대통령 특별수행원
▼유호열 교수 약력▼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박사
△민족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 위원
△민족통일연구원 통일정책실장
△한국정치학회 총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