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만의 가뭄으로 온 국민이 시름 속에 하늘을 지켜보고 있던 터에 벌어진 민주노총 주도의 파업으로 나라 전체가 심란하고 혼란스럽다.
이런 가운데 항공사 파업의 정부내 주무장관 중 한 사람인 오장섭(吳長燮) 건설교통부 장관은 12일 국회 건설교통위 간담회 답변에서 항공파업에 대한 관계부처 장관회의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다”고 실토했다. 물론 해외출장 중이라 참석하지 못한 것이지만 오래 전 예고된 항공대란을 앞두고 건교부 장관이 화급하지 않은 사안과 관련해 해외출장을 간 자체가 일의 선후와 경중을 구분하지 못한 태도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제3자 개입의 오해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노동부가 건교부의 관여를 막아 대책 마련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또 경찰이 불법파업 중인 일부 주동 조종사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지만 집행에 소극적이었지 않으냐는 여론의 지적도 정부는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이번 사태를 더 근본적으로 얘기하자면 민주노총이 불법연대파업을 강행하고 거리에 화염병 불길이 다시 등장해 시민의 마음을 졸이게 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한 일은 도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출퇴근길 노상 시위를 허용해 시민이 통행에 위협을 느끼고 귀갓길 서울 한복판의 교통이 마비되도록 놓아 둔 정부의 의도는 무엇인가.
혹시 일부 근로자들의 표를 의식해 더 많은 시민을 피해자로 만든 것이라면 정부 여당은 결국 더 큰 것을 잃고 말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파업 때문에 얼마나 많은 기업인들이 사업 의욕을 잃고 있는지 정부는 알기나 하는가. 오죽하면 한일경제 고위협의회에서 일본대표단이 한국의 강성 노조를 이유로 투자증대를 거부했고 미국의 CNN방송은 파업 때문에 한국이 발목을 잡힐 것이라고 예언했을까. 그러는 사이 우리 경제는 멕시코의 언론에서조차 ‘닮지 말아야 할 대상’이라고 조롱받는 처지가 됐다.
정부는 제프리 존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이 12일 국회모임에서 “미국이 80년대 노동자들의 불법파업행위에 정부가 확실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노동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 말을 경청해야 한다. 이 정권이 합법화해 준 노동단체가 저지르고 있는 불법행위에 정부가 단호할 수 없다면 우리나라에서 노동유연성 문제는 영원히 물 건너 갈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두고두고 정부 여당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