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라고 무시하는 건가요. 타들어가는 농심을 위로하지는 못할 망정….”
10일 오후 1시 반경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초평천 인근 농로. 경기 넘버의 하얀색 중형 승용차 한 대가 농로를 가로질러 초평천의 물을 논에 대던 농업용 호스를 휘감은 채 100여m를 끌고 갔다.
인근 지방도에서 물 공급 과정을 살피다 이 광경을 목격한 논 주인 임모씨(63)는 소리를 질렀지만 승용차는 호스를 끊어놓은 채 그대로 달아났다.
임씨는 도로에 세워두었던 트럭으로 200m 가량을 뒤쫓아가 농로에서 도로로 나오는 문제의 승용차를 가로 막았다. 승용차는 농로가 비좁고 울통불퉁해 빨리 달리지 못했다.
“농로는 일반 차량들이 다니는 길이 아니예요. 진입구의 ‘차량출입금지’ 표지판 못봤어요? 호스가 농로를 가로지르고 있지만 홈을 파 절반 이상이 땅에 묻혀 있기 때문에 조금만 조심하면 괜찮을텐데 이게 뭐예요.”
그러나 승용차에서 내린 40대 후반의 남자는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호스가 휘감긴지 몰랐다. 돌이 튀는 줄만 알았다”고 변명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호스값을 물어주겠으니 현장으로 가보자”고 약속한 뒤 임씨가 농로로 되돌아가는 사이 그대로 ‘뺑소니’를 치고 말았다.
“호스 값은 얼마 안돼요. 하지만 농민의 고통을 아랑곳 않는 행태에 분이 삭혀지지가 않아요. 꼭 불러다 사과라도 받아야겠어요.”
임씨는 13일 인근 파출소를 찾아 당시 기재해 두었던 문제의 승용차 차량번호(경기X버 6XX8호)를 제시한 뒤 수배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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