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에서 자라 바다와 함께 살아온 저, 설마담은 '회'란 것이 그다지 특별한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늘상 밥상에 오르는 것이 각종 생선과 해산물로 만든 반찬들이었으니 저도 모르게 맛있고 싱싱한 해산물에 익숙해진 거죠.
그런데 스무살을 넘기고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제까지 제가 먹어왔던 해산물 요리와는 또다른 맛의 세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게 바로 '스시-회초밥'이란 거였습니다.
밥이면 밥, 회면 회지 회초밥은 뭔가? 맛있는 회 많이 못먹게 밥에 얹어서 주는 게 회초밥인가? 횟감의 신선도가 떨어지면 표 안나게 양념해서 주는건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죠. 이건 뭐시냐, 달달하고 새코므리하게 간이 밴 밥과 부드러운 횟감이 어우러져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맛을 내는게 아니겠습니까. 우연히 먹어본 맛있는 그 음식, 스시. 그 후론 가장 먹고 싶은 음식, 누가 밥사준다 하면 체면 무시하고 덥석 손을 이끄는 1순위 음식이 되어 버렸죠.
제가 꿈꾸는 스시는 백화점 지하에서 파는 네모난 스시가 아닙니다. 학교 앞 회전초밥집의 커다란 밥에다 쥐포 같이 얇디얇은 회쪼가리 붙여주는 그런 스시도 아니죠. 간이 잘 밴 밥 위에 두께 1cm로 길게 길게 꼬리를 빼고 앉은 스시. 젓가락으로 집었을 때 부스러지지 않으면서도 꼬리를 살짝 간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스르륵 녹아버리는 잘 만들어진 스시. 바로 그 스시였습니다.
이런 제가 스시의 본고장 일본에 도착했을 때 두툼한 '꿈의 스시'가 눈앞에 두둥실 떠올랐던 것이 너무도 당연했지요. 저만이 아니라 일본 사람들도 다 좋아하는지 지하철의 광고에까지 꼬리달린 스시를 응용하더라구요. 하지만 정작 살인적인 일본의 물가 때문에 여전히 멀리만 있던 그 꿈의 스시를 홋카이도의 매서운 바람이 부는 어느 작은 스시집에서 드디어 드디어 맛보게 되었답니다.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이 된 홋카이도의 작은 항구도시 오타루에는 '스시야 street' 란 거리가 있지요. 길가에 주욱 스시 가게가 몰려있는 곳. 날도 춥고 배도 고프고 계속 중국음식이 먹고 싶다고 떠드는 홍대리 옆에서 어깨를 움츠리고 그 거리를 걸으며 저는 스시 생각이 나서 우울해졌습니다.
" 배고프지? 점심 뭐 먹을래? "
" 스시"
늘 똑같은 제 대답이 그날따라 불쌍해 보였는지 귀찮았는지 돈을 쥐어주며 저 혼자 다녀오라는게 아니겠습니까. '아니야, 그냥 같이 가서 마파두부나 먹자' 할 줄 알았지? 오늘만은 그렇게 못한다. 푸하하.
마음이 바뀔세라 냅다 가까이 있는 스시 집으로 튀었죠. 문을 열자 마자 "이랏샤이마세-" 하는 힘찬 주방장의 음성에 순간 멈칫. 아차, 나 일본말 하나도 못하지.
스시를 맛있게 먹으려면 카운터에 앉아 주방장이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스시를 받아먹어야 한다는데 반벙어리가 되어버린 나는 우물쭈물 서있다가 구석 자리에 가서 조용히 앉았습니다. 우리 예산에 만만치 않은 가격표를 보고 망설이다 가장 싼 1500엔짜리 스시세트를 가리켰죠. 으앗. 그런데 실제로 나온 스시는 메뉴판의 그림에 있는 것 보다 훨씬 훌륭한, 두께 최소 0.5cm, 최대 1cm에 꼬리를 어느 정도 길게 뺀, 꿈에 그리던 바로 그 스시가 아니었겠습니까.
이게 웬 호강이냐 싶어 신이 났죠. 종업원을 불러 하나하나 이름을 물어보기까지 했다니까요. 엔가와(생선 지느러미)는 광어회에서 지느러미 부분의 씹히는 맛을 아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하고, 오도로(양질의 참치)는 마구로(참치)의 지방이 많은 뱃살부분으로 붉은 살에 흰 지방이 점점이 또는 줄무늬로 박혀 입에서 스르르 녹는 맛이 일품이었죠. 아와비(전복)는 칼질을 해서 살짝 불에 익힌 것 같았는데 뼈가 오돌오돌 씹히고 너무나 고소했습니다. 이 지방의 특산물인 빨간 점이 찍힌 게살로 만든 스시와 거의 익히지 않은 날새우 스시도 신선 그 자체였죠. 그밖에 사케(연어), 운니(성게), 날치알, 곡끼, 오따떼(뭔지 잘 모르겠음) 가 나왔는데 더이상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넋을 놓고 먹었다니까요.
(먹느라 정신 팔려 사진 찍는 것도 잊었답니다. 두자리 빈거 보이시죠?)
이렇게 오랜 숙원을 풀고 나와 계산을 하려는데 카운터 언니가 내미는 계산서에는 2000엔이 찍혀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손가락질을 잘못했거나 주방장 아저씨 눈이 사팔이였거나 둘중의 하나였겠지만 어쩐지 처음에 주문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게 나왔던 거였죠. -_-;
벌써 딴 음식을 먹고 나와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홍대리는 역시 마파두부를 먹었다고 하네요. 본의 아니게 2만원짜리 먹었다고 두런두런 변명을 해댔더니,
"좋아. 하루 호텔에서 안자고 야간열차 한번 더 타지뭐. "
아, 이렇게해서 스시 한 접시 먹고 하룻밤 편한 잠자리 날렸죠 뭐.
☞ 어디서 먹나요?
[맛있는 스시]스시를 어디서 먹는지는 별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일본에는 아주아주 역사가 깊은 진짜로 비싼 스시집에서부터 한접시에 무조건 100엔인 회전초밥집까지 아주 다양한 스시집이 있답니다.
하지만 제가 갔던 '오타루'의 스시는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신선하고 맛있기로 유명하대요. 여행중 만난 일본 친구가 '너 진짜 거기서 스시 먹었냐?' 고 놀라더라니까요.
스시에 대해 잘 몰라 뭘 시킬지 모르는 사람은 저처럼 세트를 시켜 하나씩 먹어본 후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을 따로 추가로 시키면 되지요. 먹고 싶은 것 이름을 미리 적어가서 주방장에게 시켜 먹어도 되구요. (이렇게 주문해서 먹으면 좋은 게 나오니까 더 비싸다나요.) 참고로 오도로보다 더 좋은 최고의 참치는 '주도로'라고 하고 엔가와(지느러미), 우나기(장어) 와 함께 일본 스시집에서 제일 비싸고 인기있는 종목이라고 하네요.
꿈틀이부부 tjdaks@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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