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지방문화재 심하게 훼손
《“저기 주민들의 발에 짓밟혀 죽어가는 잔디 좀 보세죠. 저도 분당에 살지만 분당 주민들의 실종된 시민의식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12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 신도시 중앙공원에 산책을 나온 김정식씨(50)는 공원 곳곳에 훼손된 잔디와 관목을 바라보면서 긴 한숨을 내쉈다. 평소 분당구 주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 공간인 중앙공원이 시민들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마구 훼손돼 몸살을 앓고 있다.》
11일 오후 7시반부터 4시간 동안 진행된 KBS 2 TV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인 ‘일요일은 즐거워’ 야외 촬영으로 경기도 지방문화재 116호인 ‘한산 이씨 한평군파 종묘’가 심하게 파괴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
분당 신도시 입주 10주년을 기념해 한국토지공사가 주최한 이번 행사를 구경하기 몰려든 분당 시민들은 보다 좋은 ‘명당’ 자리를 잡으려고 출입이 금지된 한산 이씨 한평군파 종묘와 아천부원군 사당을 마구 ‘침범’했다.
특히 싸이 클릭B 클놈 등 인기 연예인을 보기 위해 오후 5시부터 몰려든 10대 청소년들은 성남시 중앙공원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통제를 뚫고 아천부원군 사당 담장 위로 올라갔다. 일부는 담장 위에 있는 기왓장을 떼어내 바닥에 깔고 앉았다. 이로 인해 깨진 기왓장만 50여장에 달한다.
가장 수난을 당한 곳은 언덕에 자리잡아 무대가 설치된 중앙공원 광장을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였던 한산 이씨 한평군 분묘. 수백명의 시민들은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분묘 봉분 위까지 앞다퉈 올라갔다.
“4년전 KBS 열린 음악회 야외 녹화 촬영이 열렸을 때도 수만명의 시민이 잔디밭과 사당에 몰려들어 심하게 훼손된 적이 있었다. 똑같은 일이 두 번 일어난 것은 관리사무소의 대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산 이씨 한평군파 종중 이원구부이사장(63)은 시민의식 부재도 문제지만 중앙공원 관리사무소측의 안이한 행동을 지적했다. 과거의 경험을 살려 경찰 병력을 더 늘리고 적정 수용인원을 초과하지 않도록 공원 출입 자체를 철저히 막았어야 했다는 것.
이에 대해 성남시 공원관리과 이은규계장은 “경찰 300여명과 공익근무요원 성남시 공무원 60명 등을 동원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잔디밭과 사당 계단을 지켰지만 마구 밀고 들어오는 수만명의 시민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분당 시민들을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한 한국토지공사는 주최측이란 이유로 중앙공원 잔디와 관목은 물론 한산 이씨 한평군파 종중의 망가진 봉분을 복원시켜주는 등 추가 부담을 안게됐다.
토지공사 홍보부 강영준과장은 “시민들을 위한 행사를 다시 갖고 싶어도 질서 유지가 잘 안될 것이 염려돼 모든 것이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gd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