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관광의 명소, 피사의 사탑이 수년에 걸친 지반보수공사 끝에 최근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비록 삐딱하게 기울어진 모습 그대로이긴 하지만. 오히려 삐딱해서 보기 좋은 것의화려한 재기를 축하하기 위해 6월 16일 대수술을 집도했던 세계의 기술자들이 이 탑을 피사시에 넘기면 그 다음날 피사의 수호신 성 라니에를 기리는 전통적인 축제가 열린다. 별들이 강물 속으로 가라앉을 무렵이면 수많은 촛불을 아르노강에 띄우고, 세계적인 테너 보첼리가 야외 콘서트를 펼칠 것이라고 한다.
▷피사의 사탑을 마주 하노라면 마치 인간의 심연을 보는 듯하다. 인간 심성엔 무엇인가 이 사탑처럼 삐딱한 데가 더러 있다. 그래서 인간의 언어와 제도의 숲 속에도 삐딱하게 서있는 나무들이 많다. 종교와 예술의 화원에 돋아난 사이비, 정보의 바다에 떠다니는 음란물, 집회 시위 현장에 난무하는 욕설과 폭력, 공창, 원조교제, 낙태, 살인, 안락사, 그리고 형벌제도의 동산에 노송처럼 비스듬히 서 있는 사형제 등등.
▷며칠 전 미국 인디애나주 테러호트 교도소에선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파범 맥베이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그는 한낱 폭파범에 불과하지만 ‘연방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거대한 권력’이며 ‘연방청사 폭파는 통제할 수 없는 연방정부에 대한 정당한 전술’이었음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의 진술 중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라고 끝맺는 시구가 허무의 난파선을 연상케 한다.
▷그럼에도 사형은 형법의 세계에 불안하게 서 있는 사탑과 같다. 사형은 사형수의 과거만 묻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치유하는 사형수 자신의 놀라운 내적 변화는 묻지 않는다. 그를 잃고 한평생 아픔 속에 살아갈 가족들의 고통도 묻지 않는다. 그래서 사형은 잔인한 범죄보다 더 잔인하다. 미 연방대법관을 지낸 블랙먼은 생애 마지막 판결에서 사형에는 편견과 오류의 잔재들이 섞여있어 더 이상 사형기구의 서툰 수리공노릇을 않겠노라 선언했다. 사탑의 수리공들에게 퍼부어졌던 ‘무책임한 광기’라는 비판이 오히려 사형의 틀에 딱 들어맞는지도 모른다.
김일수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법학)ilsukim@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