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 않은 기간 기업에 몸담아왔지만 요즘처럼 ‘투명성’과 ‘리더십’이라는 말을 자주 들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국내 경제사정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수출이 몇달째 감소세를 나타내면서 우리 상품과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높일 묘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널리 알려진 회사들의 이름이 하나둘씩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의 체력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주가지수가 600선에서 헐떡이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 기업의 경쟁력과 함께 경영의 투명성이 도마 위에 올려지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크게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속으로는 중병치레를 하고 있는 게 우리의 자화상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불명예스러운 멍에가 우리 목에 걸려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멍에를 시원스레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인지 답답해하는 이가 어디 한두 사람뿐이겠는가. ‘왜 한국에는 미국 GE의 잭 웰치나 일본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같은 걸출한 최고경영자(CEO)가 나오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힘든 것 또한 우리를 답답하게 한다.
기업의 투명성 확보가 최근 들어 기업 경쟁력의 기반으로 중요시되면서 이 명제와 관련해 다양한 처방이 제시되고 있지만 어떤 것은 실효성에 적지 않은 문제를 갖고 있다.
경영이 기업의 목적과 비전을 실행하면서 그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시켜 나가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회사의 모든 기관은 마땅히 이를 사명으로 삼아 철저히 그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알 만한 분들조차 경영의 책임자와 이사회 또는 그 구성원을 대립적인 것으로 설정해야 의사 결정이 바로 서고 따라서 경영의 투명성이 보장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은 지난날의 지우기 힘든 우리 기업의 역사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회사의 기관을 주어진 사명과 역할에도 불구하고 서로 가치를 달리하는 구조로 설정하는 것은 기업의 존재나 경영의 가치를 지나치게 가볍게 본 결과는 아닌지 염려된다. 자칫하다간 그렇게 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주주가치는 고사하고 그 기업의 생존 자체가 문제될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CEO가 주주가치로 대변되는 기업가치를 파괴시킬 만큼 의심갈 만한 인물이라면 현재의 시스템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게 돼 있다. 우리 사회의 수준도 그런 문제에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아졌다.
요즈음 새삼스레 CEO의 역할에 합당한 처우와 관련해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점차 기업 경영에서 CEO의 사명과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높아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투명성에 대한 사회적 여망은 경영기관의 대립적 구도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을 이해하고 경영상의 의사결정 과정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달성되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외이사제도 이같은 관점에서 출발해야 제도 도입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이미 성공을 거둔 CEO와 수많은 CEO 후보자들이 신뢰 속에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를 보내면서 이들이 능력을 100% 발휘할 제도를 마련하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권문구 LG전선 권문구(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