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 강남지역 학부모들의 모임인 ‘서초강남 교육시민모임’이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매년 2회 실시하자는 청원을 교육부 등에 제출했다. 이들은 “수험생들이 오랜 기간 닦아온 실력을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현행 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반대측은 2회 실시할 경우 난이도 조절이 어렵고, 대학이 수능위주 선발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며, 문제은행이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으므로 시일을 두고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찬성-오랜 공부 단 한번 시험 가혹▼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은 지난 한 달 동안 대학수학능력시험을 2회 실시하자는 주장을 700명의 서명을 받아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청원서로 제출하였다. 청원의 내용은 수능시험을 1주 내지 10일의 간격을 두고 연속적으로 2회 실시하자는 것이다.
2002학년도 대학입시에서는 수능을 등급제로 하며 ‘자격 고사’화 한다는 교육부의 공언과 달리 수능성적 1, 2점 차이로 지망 학교와 학과가 달라질 정도로 수능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대입제도가 개선되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전형 자료들의 영향이 아직 미미하기 때문이다. 수능시험 1회 실시가 타당한 것인가라는 의문은 여기서 출발했다.
1회만 치르는 수능시험으로 과연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을 적절하게 측정해 낼 수 있을까. 수능시험이 공공성과 객관성을 보장하고 더구나 고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하고 있는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이에 비해 수능시험을 2회 실시하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객관성이 크게 향상된다. 오랜 기간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 한 번으로 기회가 제한되는 수능시험은 학생들을 불안, 긴장에 빠지게 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작용한다. 즉 그 날의 ‘운’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기 쉽다. 특히 여학생은 생리 주기 때문에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둘째, 대학에 학생 선발을 위한 다양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셋째, 2회에 걸쳐 실시하면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실력으로 평가하는 합리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할 때 비합리적인 역술인이나 종교에 의지하는 사회 풍조가 나타난데는 기회를 극단적으로 제한한 것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능시험은 첫해인 1994년 3개월 시차를 두고 2회 실시했지만 취지를 살리지 못해 중단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난이도 조정 실패였다. 당시엔 원점수만 반영했는데 이것을 표준점수제로 바꾸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학사 일정, 출제위원, 감독관 차출, 채점 기간 등의 문제도 두 시험의 시차를 1주나 10일 정도만 주면 해결된다. 한 번 조직한 출제 팀이 두 번의 문제를 출제토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한국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학력적성검사(SAT)를 연간 6회 정도 치르고 있다. 한 번만 치르는 나라도 많지만 한국과는 경우가 다르다. 대학 입학보다 졸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 게시판(www.edu8.or.kr)에 올라온 글을 보면 수능시험을 2회 실시하자는 사람들은 수험생의 현실에 근거하여 진지하게 필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입제도와 수능시험 자체를 부정하거나 문제은행식 대안, 시험 스트레스만을 거론한다.
과연 이번 청원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단 1회는 너무 가혹하다. 최소한 여론 수렴을 위한 노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김정명신(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
▼반대-난이도 조절등 문제점 많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처음 도입된 1994학년도에는 8월과 11월 두 차례 시험을 실시했다. 채점 결과는 1차 시험 평균이 49.2점, 2차 시험 평균이 44.5점으로 2차 시험이 더 어려웠다. 난이도 조절 실패로 여론의 비판을 받자 이듬해인 1995학년도부터 연 1회 실시로 바뀌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이러한 관행을 깨고 수능을 연 2회 실시하자는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1년에 단 한 차례, 그것도 하루에 치르는 시험으로는 수년간 닦은 실력을 정확히 잴 수 없다는 측정학적 이론만으로도 충분한 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능을 연 2회 실시하려면 다음과 같은 점이 검토되고 논의되어야 한다.
첫째, 난이도의 차이로 인해 특정 수험생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도록 두 시험간의 난이도가 비슷하게 출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94학년도 시험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난이도 수준을 일치시키기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난이도 차이를 조절하기 위해 2000학년도부터 표준점수제를 도입했지만, 지금처럼 표준점수와 원점수를 함께 제공하여 대학이 선택적으로 활용하게 하는 한 연2회 실시는 어렵다.
참고로 2002학년도의 경우 4년제 국공사립대학 192개 중 142개 대학이 표준점수를 활용하고, 50여개 대학은 여전히 원점수를 사용하고 있으며 전문대학까지 합치면 원점수 활용 대학 수는 더 늘어난다.
둘째, 미국이 대학입학시험인 SAT나 ACT를 1년에 5, 6차례 실시할 수 있는 것은 오랜 기간 문제은행을 충분히 구축하였기 때문에 가능하다. 문제은행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40배수의 문항이 축적되어야 하는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므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시행되어야 한다.
셋째, 2회를 실시하더라도 시차를 일정 기간 이상 두지 않고 1주일 내지 10일의 간격으로 실시한다면 정상적으로 시험을 치른 수험생에게 오히려 요행심을 부추길 수 있다. 참고로 일본 대학입시센터시험의 경우 본시험을 실시한 1주일 후에 추가 시험을 실시하는데 그 대상자는 질병, 부상, 기타 사정으로 시험 당일 응시할 수 없는 자로 제한하고 있다.
넷째, 수능시험을 두 차례 또는 그 이상 실시할 경우, 대학은 수능시험 점수의 비중을 줄이고 대입전형 방법을 다양화, 특성화하려는 노력보다는 수능시험 위주의 선발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서는 수능시험이 다른 전형 자료에 비해 신뢰할 만하지만, 수험생이 갖고 있는 다양한 능력을 고려할 때 수능 위주로 당락을 결정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따라서 대학이 다양한 전형 방법을 개발해 전형 자료로 활용하는 입시문화가 정착될 때까지 수능시험을 최소화하려는 정책 방향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상에서 언급한 사항들에 대해 이해관계자를 포함한 전문가의 충분한 검토가 있고 난 후에 수능 2회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본다.
이 현 청(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