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관련 서적들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칼 마르크스의 박사학위 논문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그린비), 레온 트로츠키의 ‘반(反)파시즘 투쟁’(풀무질), 트로츠키의 자서전 ‘나의 생애’(범우사), 로자 룩셈부르크의 서간집과 평전을 함께 묶은 ‘자유로운 영혼 로자 룩셈부르크’(예담)…. 마르크스주의는 1990년을 전후해 사회주의 정권들이 붕괴된 후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으나 최근 한국 독자들이 이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이밖에도 프랜시스 윈의 ‘마르크스 평전’(푸른숲), 로만 로스돌스키의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형성’(백의) 등이 출간 준비 중이고, 전7권으로 계획된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풀무질)도 곧 1권부터 차례로 발간될 예정이다.
요즘 나오는 마르크스주의 관련 서적을 보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은 크게 두 방향이다. 하나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인물의 삶에 대한 ‘동경’적 관심이다. 이런 현상은 2000년 초에 출간돼 화제를 모았던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부터 본격화됐다. 이 책은 지금까지 1년여만에 약 6만 부가 판매됐고 지금도 매달 2000∼3000부가 팔리고 있다.
이런 독자들의 관심은 굳이 마르크스주의라는 사상에 매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숨가쁜 일상에 얽매여 돈벌이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상을 위해 일생을 걸었던 인물의 삶은 대단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작년 발간된 파울 프뢸리히의 ‘로자 룩셈부르크의 생애와 사상’(책갈피)도 판을 거듭하며 꾸준히 판매되고 있고, 이번에 발간된 트로츠키의 자서전은 여러 출판사가 탐을 내던 차에 범우사에서 먼저 1권을 내놓은 것이다.
또 다른 관심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이에 대한 대안 찾기의 일환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보려는 것이다. 작년 5월 발간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전3권·백의)이 그 ‘지적 무게’에도 불구하고 1000질이 넘게 팔리고 있는 것은 출판가에서도 의외의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향수만으로 보기 어렵다.
비슷한 시기에 발간된 사이먼 클락 등의 ‘레닌에 대해 말하지 않기’(이후)나 최근 발간된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노동자 계급에게 안녕을 말할 때인가’(책갈피) 등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마르크스주의 다시 보기를 적극적으로 제안한 책이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의 박사학위 논문을 번역한 고병권씨(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원)는 “마르크스주의를 정면으로 바라보기조차 어려웠던 1980년대와 달리 이제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마르크스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이야말로 마르크스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백의출판사에서 편집을 맡고 있는 신희용씨처럼 “사회운동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비판사회이론에 관심을 갖기는 하지만 당분간 마르크스주의의 확산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질 들뢰즈나 자크 데리다 같은 프랑스의 포스터모더니스트들이 1990년대 들어 마르크스로 돌아갈 것을 역설해 왔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일군의 지식인 집단을 형성한 한국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주목된다.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