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합병, 성립하지 않았다' 이태진 편저/322쪽 1만원/태학사▼
일본의 많은 우익인사들은 일제의 한국침략이 정당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들은 일제의 한국 지배가 한국 발전에 도움을 줬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도 이런 잘못된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일본인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최선이다.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가 엮은 이 책은 이런 목적에 걸맞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한일의 학자들이 일제에 의한 한국 합병의 불법성 여부에 대해 일본의 유명 월간지 ‘세계’를 통해 7차에 걸쳐 벌인 지상논쟁을 묶었다.
이 교수는 1998년 7월에 실린 첫 번째 글에서 1904년 러일전쟁이후 1910년 한국합병조약에 이르기까지 한일간에 체결된 각종 조약은 일본의 일방적 강요에 의한 것인데다 문서의 형식도 제대로 갖추지 않아 무효라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1905년의 제2차 한일협약(일명 을사보호조약)은 비준서에 해당하는 공포칙유에 고종황제의 서명이 없기 때문에 국제법적으로 성립하지 않았다는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간사이대 법학부 사카모토 시게키 교수는 한일합병조약이 도덕적으로 부당하지만 법적으로는 유효하다는 ‘유효부당론’을 제기하며 반박했다. 일본이 한일합병조약을 강제하긴 했지만 제국주의시대의 열강들은 강제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
이 교수는 사카모토 교수의 주장에 맞서 서구 열강들은 중요협정들을 정식조약 형식을 취한데 비해 일본이 처음으로 격식을 어긴 조약으로 한국의 국권을 탈취했다고 증거를 열거하며 반박했다.
그러자 전 메이지대 문학부 운노 후쿠쥬 교수는 조약의 형식은 당사국 사이의 합의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며 한일간의 협정들은 정부간 협정이었기 때문에 전권위임장과 비준서가 필요없는 것들이어서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쓰루가다이대 현대문화학부 아라이 신이치 교수는 20세기초의 국제법 관행과 학설에 따르면 보호국화와 같은 중대조약은 정식조약 체제를 갖춰야 하는데도 일본은 약식조약 형식을 취한 뒤 합법성을 강변하고 있다며 이 교수의 주장에 동조했다.
이번 논쟁을 통해 한일합병의 무효론과 불성립론을 일본인들에게 알린 것은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kim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