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 임정자 글 이형진 그림
□ 131쪽 6500원 창작과비평사
어른이 아이들 동화를 함께 읽어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동화를 통해 아이들 생각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가만히 있어도 이야기가 나오는 시기라고 한다. 심지어 공상과 현실을 구분 못할 때도 있다고 하니 모든 아이들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 재주를 학원과 학습지에 모두 빼앗겨 버리는 게 현실이다. 아이들의 공상의 세계를 잠깐 엿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이 ‘들꽃같은’ 생명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이 책의 작가는 아이들과 눈 높이를 맞추는데 애정과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그 믿음 때문인지 이 동화는 쉽고 재미있다.
도시의 아이들 눈에 비치는 엄마는 늘 강요하며 때리거나(낙지가 보낸 선물) 말이 통하지 않거나(꽁꽁별에서 온 어머니) 못 놀게 하거나(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필요할 때 옆에 없는(이빨 귀신을 이긴 연이) 모습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모습이 내 모습인 것 같아 찔끔하다.
이 동화들은 이런 엄마의 모습을 해결하는 방법을 환타지 기법을 통해 유쾌하게 보여준다. 빨판이 있는 낙지 신발을 신고 ‘때리는 엄마’에게서 멀어지고, 말을 못 알아듣는 엄마를 위해 엄마의 어린 시절 기억을 찾아오고, 같이 놀 도깨비를 찾아내고, 엄마 옆에 다가선다.
아이들다운 상상의 내용을, 언젠가 들어 본 듯한 옛이야기의 형식을 갖추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살아 있도록 쓴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사람에게 ‘심심함’은 큰 에너지인 것 같다. 결국 예술은 그 ‘심심함’ 뒤에서 자기를 돌아보며 나오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에게도 한동안 유행했던 창의력 개발은 잘 짜여진 프로그램 보다 심심한 시간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아이들이 원하는 엄마도 ‘심심하게’ 아이 곁에 함께 있는 엄마가 아닐까
이야기가 풍부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과 뒹굴면서 함께 읽고 ‘심심한 시간’을 함께 가지기 좋은 책이다. 읽고 나면 아파트 계단이며 컴퓨터 모니터가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꿈틀거리는 경험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김혜원(주부·서울 강남구 수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