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은 신음한다'/유경찬 지음/250쪽 /9000원/ 부키
IMF 위기사태로 많은 금융기관이 정리됐고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엄청난 희생과 비용을 치렀지만, 금융파탄의 원인에 대한 다각적 분석엔 극히 소홀했다. 과잉중복투자를 벌였던 기업들이 도산 위기에 처하면서 금융기관에 거대한 부실채권이 쌓였고, 이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금융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는 지적이 고작이었다.
특히 개별 금융기관의 경영과 감독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단지 “금융기관에 주인이 없는 것이 문제다”, “정부의 관치 개입을 없애야 한다”, “감독기관의 일원화가 필요하다”, “수익성 중심의 경영을 확립해야 한다”는 등 극히 원론적인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IMF 위기사태에 인재(人災)라는 측면이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을 짚고 가야 한다. 사람은 항시 실수를 범하게 마련이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극히 최근까지도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금융의 현장에서 근 25년을 종사했던 한 퇴역 금융인이다. 누군가 기록을 남기고 가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쓰여진 책이라는 인상이다.
저자가 어떻게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고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금융사고의 실사례에 대한 현장 취재적인 기술이다. 금융업에 종사하거나, 금융을 배우고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꼭 챙겨봐야 할 것들이다.
90년대 초 종금사, 증권사가 회사채 지급보증 업무에 뛰어들면서 1.0%가 넘던 지급보증 수수료가 0.3%로 밑으로 수직 하락했다. 그래도 금융기관들은 마치 보물섬이라도 발견한 듯 막무가내였다. 그냥 지급보증서에 도장만 찍어주는 대가로 연간 수십억 원이 벌리는데 어찌 마다할소냐.
매사 이런 식으로 금융기관들은 영업을 확대했다. 외환위기 직전에 자기자본이 2300억원인 한종금사는 총자산을 4조8천억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정이 이처럼 막 나가는 데도 정부는 손놓고 있었다. 급기야 홍콩의 정부당국에선 1996년 한국 금융기관들의 진출을 자제시켜 줄 것을 한국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다.
금융개혁의 와중에도 같은 류의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 98년 후반부터 은행금리가 한 자리 숫자로 떨어지면서 투신권으로 돈이 몰리자, 투신사들은 실적 부풀리기에 눈이 멀었고, 발행기업의 신용상태를 무시한 채 회사채나 신종기업어음(CP)를 무더기로 사들였다. 대우그룹 계열사의 물량이 대거 포함되었고, 그 결과로 자본시장은 현재 마비상태이고 기업들의 자금난은 계속되고 있다. 충격적인 사례를 꼼꼼하게 정리해 준 저자께 심심한 사의를 표하고 싶다.
이찬 근(시립인천대 무역학과 교수·국제금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