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경제 위기보고서'/마이클 포터 외 2명 지음, 신동욱 옮김/334쪽 /1만2000원 /세종연구원
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했고, 그 때문에 수많은 나라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일본이 10년 넘게 장기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저자들은 일본 경제의 위기를 흔히 그 동안 일본 경제의 성공요인이라고 믿어 왔던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일본식 정부 모델의 한계이다. 통산성과 산업 정책으로 대표되는 일본식 정부 모델은 특정 산업의 육성, 공격적인 수출 진흥, 광범위한 규제, 국내 시장의 보호,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제한, 금융 시장 규제,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등 각종 지원과 규제를 통해 적극적으로 일본 산업을 육성하고 보호해왔다.
예컨대 60년대 철강과 조선 산업, 70년대 반도체 산업, 80년대의 컴퓨터 산업 등은 일본 정부가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육성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따라서 많은 국가들은 전후 일본 경제의 기적을 일본 특유의 관료적 자본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고 심지어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신봉해 온 미국 정부마저 일본식 산업 정책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저자들은 일본식 정부 모델은 일본의 성공 요인이라기보다는 실패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 제시된 일본 산업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에 의하면 현재 일본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산업인 자동차, VCR, 로봇공학, 카메라, 복사기, 비디오 게임 등에서는 일본 정부의 역할이 매우 미미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오히려 전통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산업인 화학, 항공기 제조, 소프트웨어, 금융 서비스 등의 분야에서는 정부의 간섭과 다양한 공동 사업이 진행되었고 한결같이 보호 조치들이 행해졌다. 따라서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간섭이 일본 경제를 부흥시켰다는 믿음은 잘못된 통념이다.
일본 경제가 위기를 맞이한 두 번째 이유는 일본식 경영 관행의 한계이다. 지난 20년 동안 린생산방식, 전사적 품질관리(TQM), 기업간 강력한 협력 네트워크, 지속적인 개선 등 일본 기업의 탁월한 경영 관행들은 이들의 성공과 함께 전세계로 확산됐다.
그러나 일본 기업의 독특한 경영 관행이 확산될수록 오히려 일본 기업의 경쟁력은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즉, 80년대 중반 이후 많은 서구 기업들이 일본식 경영 방식을 적극적으로 모방하고 개선함으로써 그 동안 일본 기업만이 누리고 있던 이점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혁신보다는 개선을 중시하는 일본식 경영 스타일은 경쟁자와 차별화 되는 가치를 창출하는데 실패했다. 그 예로 저자들은 단적으로 ‘일본 기업들은 전략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일본 기업들은 경쟁자들과 뭔가 다른 가치들을 제공함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지위를 확보하는 전략적 접근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적극적으로 일본 정부의 산업 정책은 물론 일본 기업의 경영 기법까지 고스란히 모방한 우리 나라 입장에서는 이 책에 분석된 일본 경제의 위기가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이동현(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